2024
1.2
거창한 목표를 이루는 것에 골몰하기보다는
흐름에 따른 나의 삶에 집중해보려 한다.
주어진 것들을, 마주하는 순간들을 바라보며.
조화와 균형을 주고받으며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1.3
나의 가슴속에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이 피어나고 있는가.
몇 년째 여러 글을 써오고 있지만 문득 수면 위를 겉도는 단어들로 채워온 건 아닐까 싶은 두려움.
수면 위의 단어들도 분명 필요했기에 써왔겠지만
올해는 얕게나마 수면 아래의 단어와 마음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
몸과 마음을 자주 이완시켜 줘야지.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일상 속에서 혼자만의 고요함도 잘 챙겨줘야지.
내면이 진짜로 원하는 것,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유연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1.4
무경계 속에 오는 혼란과 정립.
방향을 잡을 수는 없지만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힘이 올라온다.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라 생각하면서도
애써 어우러지려니 부자연스러움이 확연히 드러난다.
해소와 소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날들.
자리를 정리하며 천천히, 나의 좌표를 찾아가는 일에 집중해 본다.
저 너머보다는 눈앞의 일을 생각하며 기다려보기.
오늘의 나는 나의 부자연스러움을 사랑하기로 했다.
1.5
단지 며칠 동안 겪은 것들로 섣부른 판단을 하기엔
보지 못했던, 시도하지 못했던,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 아직 많을 것이다.
불합리하다 여겨지는 것도, 정리되지 못해 엉켜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어쩌면
지난날의 나에게도 있었을, 혹은 지금의 나에게도 남아있을
스스로의 잣대일지도 모른다.
1.6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누가 나의 편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조금 더 목소리를 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인연을 조금 더 찾아 나서야 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꿋꿋하게 이어갈 용기를 지금보다 더 크게 가져야 할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사소한 확신이든 체력적 강인함이든 어떠한 힘이 필요한 시기.
1.7
해가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면 따뜻한 날이라 생각했던 게 순간의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지는 계절.
오랜만에 방문한 본가의 뜨끈한 바닥이 반갑고 새삼스럽다.
혼자 사는 집에선 난방비를 핑계로 뜨거움보다는 적당한 냉기와 타협하며 지낸 지 오래이기에.
좀 전까지 굳어가던 온몸이 방금 깨트린 날달걀처럼 스르륵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오늘 밤만큼은 온기 가득한 이 기분을 안아봐야지.
해야 할 일들도, 떠오르는 생각과 발걸음도 온기 없이는 아름답기 어려울 테니.
1.8
흘러가는 순간 속에 나날이 성숙해져 가기를.
괜찮은 것들이 더 많아지고,
편안한 것들도 점점 더 넓게 퍼져가기를.
'나'라는 존재를 믿어주고 채워주기를.
오롯이 서있는 나무를 꿈꾸지만,
잔가지를 부딪히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기를.
1.9
"인간은 누구나 홀로 있게 된다. 모든 것에 있어서 결국 인간은 자신에게서 행복을 구해야 한다.
고독을 즐겨라.
고독한 사람만이 온전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과 마음의 일치를 이룰 수는 없다."
- 쇼펜하우어
살아있는 삶 속에서 '고독'은 '외로움'도, '혼자'도 아니다.
그저 '몰입'과 '발전'을 위한 요소 중 하나일 뿐.
그리고 그것을 평화롭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 때,
진정한 고요와 만나 오히려 더 깊은 에너지를 품게 될 거라는 사실을
어디선가 부지런히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
1.10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말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기운들을
바로바로 터뜨리기보다 잠시만 숨을 고르자.
결국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고,
어떠한 확장과 변화를 위해 경험해야 할 것들이다.
1.12.
나의 역할은 어떤 온도를 지니고 있을까.
나의 에너지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전과는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
어느 책에서 말하길, 스스로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 타인을 돕거나 이해한다는 건 모순이라 했다.
모순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중심과 균형을 가장 먼저 챙기자.
그다음에 괜찮은 만큼 품을 내어주고, 온기가 필요한 사람의 손길을 잡아주고,
많은 걸 해주려 애쓰기보다 나를 지키는 선에서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주자.
1.13
이번달은 '고요'와 '침묵'이라는 단어를 자주 만난다.
사람들 속에서도 틈틈이 가져가야겠다 싶은 것들.
즐겨 듣던 음악도 가끔은 꺼두고,
분위기상 의미 없이 내뱉던 얘기들도 잠시 멈춰본다.
은근하게 침묵하고,
익숙하게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물건에 대한 마음을 가볍게, 사람에 대한 마음은 단순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움직임과 생각들을 가볍게.
주변에서 느껴지는 것들에 대한 반응을 가장 가볍게 하며
비어있는 듯 채워져 가는 스스로를 지켜봐야겠다.
1.15
모른 척 넘어가야 할지
말을 꺼내야 할지 결정이 쉽게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모른 척하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 배려나 어떤 균형을 위한 일이 되었으면 좋겠고,
말을 꺼낸다는 것 또한 배려와 균형을 위한 결정이 되기를 바라본다.
1.18
갑작스러운 기분.
무엇을 하고 싶기에 이토록 방황하고 있는 걸까.
또다시 무언가에 상처받거나 이용만 당하다 지치기보다는
삶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고 싶다는 욕심.
감사한 것, 따뜻한 것, 긍정적인 것,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뭉근하게 해 나가는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을 온기롭게 써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밤.
1.20
스치듯 마주하는 모든 매체들이 신기할 정도로 입을 모아 '그저 흘러가면 된다'라고 말한다.
책에서도, 일상에서도, 영화에서도.
미세한 불안을 가만히 꺼내놓고 보니 생각보다 불안한 문제가 아니었고,
써온 기록들을 오랜만에 훑어보니 습관적으로 흔들림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이제는 흔들림 대신 단단함을 끌어와야 할 때다.
수없이 일기장에 써온 삶에 대한 애정과 깨달음을 몸과 마음에 새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1.21
이왕이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싶지만
나와 그들 각자의 삶은 저마다 너무나도 다르기에.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각자의 시선과 기준에서 무례함을 정의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무례함,
누군가가 나에게 느꼈을 무례함이 아찔하다.
어쩔 수 없다.
개의치 않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친절을 꺼내어 베푸는 수밖에.
그저 나와 누군가에게 채워질 온기를 위하여.
1.23
애쓰거나 억누르지 않는 날을 더 많이 만들어간다.
나의 부족함과 흔들림을 태연하게 마주한다.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밝은 에너지를 마음껏 간직한다.
1.24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아침.
글감을 떠올려 보고 어울리는 노래도 찾아본다.
요즘 들어 글씨체가 은근하게 뚜렷해졌다.
기분에 따라 달라지던 글씨체가 언제부턴가 조금씩 일관성 있게 쓰여지고 있다.
유난히 자주 찾게 되는 단어들의 느낌을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쭉 뻗은 이완과 느슨함.
아침저녁으로 무언가를 짧게나마 써내려 가고 있는데
이 행위는 결국 나에게 어떤 비움과 채움을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생존법칙 중 하나가 된 기분.
1.25
비우면서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 날들.
어느 중학생들의 긴 글을 교정하며
삶에 대한 호기심과 의욕, 불안감, 야무지고 당찬 용기와 에너지를 실컷 마주했다.
언젠가의 나도 그랬을까.
분명 그랬었다. 아마 여전히 그럴지도.
1.26
아침의 기록은 하루의 먼지가 쌓이기 전에 마음의 공간을 세팅하는 기분이라면,
저녁의 기록은 그럼에도 쌓여버린 먼지를 툴툴 털어낼 수 있는 청소 시간과 같다.
1.27
어떤 것에 대해 익숙해지면서부터 당연해져 가는 과정이 아쉬울 때가 있다.
고마움이, 소중함이 조금씩 옅어져 간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주변 환경을 두리번거릴 때가 생겼다.
그때마다 무작정 긍정적이려 하지 않아도 고마운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매번 깨닫게 된다.
천장도, 벽도, 이불도, 난로도, 고요한 공간도.
오늘을 한번 더 사랑하며,
마침 들려오는 이적의 '당연한 것들'의 볼륨을 올리며.
1.30
나에게 필요한 것.
인내와 여유.
기다릴 줄 아는 마음과 개의치 않을 수 있는 느슨함.
고요함을 에너지원 삼아 나아갈 수 있는 지혜.
비울 수 있는 과감함과
채울 수 있는 정신적 공간.
1.31
불필요하다 싶은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싶은 대화,
태연하게 아는 척을 하는 모습,
다가오는 분노에 같이 파닥이던 감정.
결국 언젠가의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을 다시 한번 써내려 간다.
화가 난다는 것은 사실 여전히 애매모호한 감정이다.
결국 내 기준이나 생각과 다름에서 오는 것인데,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테니
결국 화는 화를 낳고, 또 다른 화를 부르는 셈이다.
반응보다 유연한 대응을 찾는 것에 머리를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