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하루가 멀다 하고 손님으로 방송일을 하는 분들이 오신다.
내가 머물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이 피디 일을 오래 하신 분인 데다
나를 이곳에 소개하여준 선배도 피디였기 때문에.
두 분의 지인들이 꼬리를 물고 숙소에 며칠씩 머물러 내려오곤 하는데
어느덧 내 이름은 그분들께 '조연출 하던 애'가 되어있었다.
조연출이라는 일을 다시 할지 안 할지도 모르겠는 이 혼란스러운 시점에,
자꾸만 마주하게 되는 피디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을
오히려 미련 없이 대하고 별생각 없이 대하는 게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잘 보여서 자리라도 하나 잡으라는 듯 은근히 등을 떠밀지만
굳이 여기 와서까지 술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척, 이해하는 척, 감탄하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배가 부른 걸까. 일할 생각이 없는 걸까.
기회라고 생각하라지만 나는 그저 여기에서의 내 일만 묵묵하게 하고 싶을 뿐이었다.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만들고, 정리도 하고 언니의 하루도 도와주며.
부모님도 내가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자 슬슬 거기에만 박혀 있을거냐며 말을 꺼내기 시작하시고,
친구도 일 할 거면 확실히 근무조건을 만들고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건만 언제 서울에 돌아오냐 라는 질문을 백 번은 받은 것 같다.
그러니 모르겠다고 대답한 것도 백 번쯤 될 거다.
멍하니 문 밖을 바라보며 음악만 듣고 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일상적인 집안일과 자잘한 일들을 하는 게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요즘.
'갈 때 되면 가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나도 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간 보이겠지'라고 하기엔 너무 뿌옇기도, 너무 선명하기도 해서 더욱더 현재에만 집중하게 된다.
까짓 거 뭔들 답이 나오겠지. 안 나오면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