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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Oct 09. 2019

당신이 상사에게 들었던 최악의 말은 무엇인가요?

 독서실같이 조용한 사무실에서 찌렁찌렁 큰소리가 터져 나온다. 나의 상사로부터 공격적인 말들이 쉴 새 없이 나오고 뾰족한 모양의 그것들은 화살처럼 내 가슴으로 날아와 콕 박힌다. 그중 한 문장이 실체가 되어 나를 때린 건 순식간이었다.


“일 참 개떡같이 하네”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히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법이다. 상처 안 받고 직장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적어도 단짠단짠의 리듬 속에서 버틴다. 그런데 요즘 나에겐 짠내밖에 안 나서 헛웃음이 나온다. 불행이 닥치면 요인을 찾고 해결하면 되는데 내가 유일한 요인인 건지 나를 둘러싼 이 상황이 잘못된 건지 도통 모르겠다.


 9월, 나는 추석을 끼고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오니 쌓여있는 일을 처리하느라 하얗게 질린 얼굴로 까만 밤 퇴근하는 날이 잦았다. 업무 특성상 시간을 다투는 일이 많아서 일의 진행 상황을 날짜 별로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데 내 기준, 나는 공백 없이 일했다. 유일한 공백이라면 추석 연휴였다. 그리고 10월 초, 지난달의 나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터졌다. 내가 잡고 있는 일 하나가 늦어졌는데 이로 인해 벌어질 문제 때문에 책임 소재를 따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부적으로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책임자는 나였다. 그리고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이 일을 둘러싼 모든 이들은 본인이 잘못한 것은 없다며 발을 뺐고, 외부 업체는 거짓말까지 했다. 상사는 나를 믿지 않았고, 소리부터 질렀다. “너 한 달 동안 뭐한 거야?”

그녀는 불같았다. 나는 그녀 앞에서 종이 쪼가리에 불가했다. 그녀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부동의 자세로 혼이 났고, 나에겐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얼굴은 점점 빨개지고 손은 차가워졌다. 나는 할 말이 많았는데, 나는 억울했는데 아냐, 이건 내 잘못인가, 그래 내 잘못이야.. 머릿속을 헤치며 수없이 원인을 따지고 있을 때였다. 나를 무너지게 한 그 말이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


눈물은 흘리지 말자.

모두가 듣고 있잖아. 모두가 보고 있잖아.

머리가 어질 했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당장이라도 그 공간에서 벗어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말 한마디가 망치보다 더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다들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귀는 이쪽을 향해 열려있다는 것을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쪽팔림은 플러스알파.

그녀는 아주 영악했다. 누가 들어도 엉망진창으로 일하는 것처럼 편집하는 능력이 있었고 그녀의 분노를 공개적으로 표현하여 모두가 공감하게끔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그 앞에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내공 따위 없다. 멍하니 앉아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급한 메일 몇 개를 쳐낸 뒤 사무실을 나왔다. 시간은 저녁 6시. 점심도 먹지 못하고 거울도 못 본 채 일하던 나는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 얼굴을 처음 봤다. 울그락 불그락, 입술은 메말랐고, 눈가는 촉촉했는데 하얗다 못해 파란 엘리베이터 조명 아래, 사방을 둘러싼 거울 속에서 무수한 내가 보였다. 그제야 난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허락했다. 다들 이렇게 일할까? 아니면 나만 이렇게 일이 힘들고 어려운 걸까? 내가 정말 ‘개떡’ 같이 일하나.


 이 말이 이렇게 상처가 된 이유는 순전히 기대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팀, 나의 상사는 내 편이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란 듯이 가장 날카로운 말로 나를 몰아세웠기 때문에 그 어떤 관계자의 말보다 더 큰 상처가 되어 버렸다.


 내가 브런치에 처음 문을 두드린 날이 딱 이런 날이었다. 퇴사를 결심한 스토리에 대해 처음으로 일기 같은 것을 썼을 때였다. 그리고 그때 그 글을 몇 명이 읽어 주었다고 알람이 울릴 때마다 두근거렸다. 이런 게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맛이구나. 대나무 숲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친 그 사람의 기분이 이랬겠구나. 그래서 나는 아직 아물지 않은 현재 진행형 내 상처에 대해 쓴다. 내 마음을 소리치고 싶어서, 브런치에서 이 글이 읽혔을 때 위로받고 싶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상사에게 들었던 최악의 말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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