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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Mar 14. 2020

맛있는 것을 아껴먹는 마음처럼

어렸을 때 나는 가장 맛있는 건 제일 나중에 먹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이었을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매미들이 찡-하고 울던 여름날, 목이 바짝 탈 때까지 바깥에서 놀다가 엄마를 졸라서 먹던 아이스크림은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빨간 케첩과 바삭한 튀김옷 속의 핫도그 소시지를 아껴먹는 마음은 얼마나 소중했는지. 또 보습학원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언덕길에 있던 닭꼬치 노상은 얼마나 유혹적이었는지. 저녁시간이 다 되어 허기진 나는 결국 주머니 속에 꼬깃이 있던 돈을 내밀면서 꼬치 하나를 게눈 감추듯 먹었고, 나를 맞이하던 엄마가 학원 끝난 시간이 몇 신데 좀 늦었냐고 물으면 괜스레 감추고 싶어서 오늘은 천천히 걸었다며 얼버무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이어지는 엄마의 외침.
“어서 손 씻고 와라 저녁 먹자!”... 내 입가에 뭍은 닭꼬치 양념은 짐짓 모른 척해주셨으리라.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는 무엇을 먼저 먹을까 하며 짱구를 굴렸다. 가장 좋아하는 고기반찬은 마지막까지 아껴먹었다. 그러면 식사 중간엔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즐겁고 마지막엔 그 반찬을 먹음으로써 행복했다. 이런 걸 회상하면 그때 나의 세상은 내 몸집만큼이나 작아서 사소한 것에도 만족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그만큼 사소한 것에 울고불고 화도 냈다.) 이제는 이렇게 아껴 먹는 마음이 과거형으로 남았다. 특별히 맛있는 메인 메뉴도 사이드 메뉴와 곁들여야 훨씬 맛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기반찬도 칼칼한 된장찌개와 채소를 함께 먹을 때 훨씬 맛이 있고 핫도그의 튀김옷도 소시지랑 같이 먹어야 제맛이다. 기다림보단 버팀이 점점 더 어울리는 삶 속에서 인내는 생각보다 더 쓰고, 열매는 기대보다 어쩐지 좀 덜 달다는 것을 알아버린 데도 있을 것이다.

작년부터 퇴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는데, 아주 일이 많던 어느 달에 발리를 다녀왔다.
일이고 뭐고 나부터 살고 보자 하며 나 스스로에게 준 휴식이었는데, 여행 자체가 아주 오랜만인 거라. 두꺼운 열대형 나뭇잎들 사이로 노란색 햇살이 커다란 창을 뚫고 비췄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요가를 했다. 고양이처럼 늘어지게 스트레칭을 하고 살짝 맺힌 땀방울을 기분 좋게 쓸어내리며 스무디 볼(Smoothie Bowl)을 먹었다. 그걸  팔던 카페에는 디지털 노마드처럼 보이는 젊은이들도 보였고, 책을 읽으며 낮술을 즐기는 중년의 여성도 있었는데 그들의 삶을 상상하며 멍 때리는 시간 조차 힐링이었다.
나에게 이 여행은 ‘맛있는 고기반찬’이었다. 참고 참다가 떠난 여행이 주는 만족감은 200% 였고, 내 일상과 대비되는 그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꿈만 같았다.  그런데 문득 삶의 발란스가 많이 무너졌다는 생각을 했다. 성취감 없이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나는 너무도 긴 시간 동안 괴로워하고 있구나를 깨달았다. 다른 반찬도 맛있지만 ‘그’ 반찬이 더 맛있어서 아껴먹는 그 시절의 밥상처럼 내 일상도 즐겁지만 때론 ‘더’ 즐거운 삶을 더 절실하게 바라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깨달은 것은 맛있는 반찬을 참다가 먹으면 좀 더 맛있다는 미각적 측면의 깨달음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한 템포 참고 견뎠을 때 따라오는 성취감 비슷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먼저 먹는 반찬이 맛이 없고 괴로움으로 남는 시식이었다면 나는 이 과정이 전혀 즐겁지 않았으리라. 튀김옷이 너무 맛이 없었다면 소시지를 먹기 위해 핫도그 자체를 먹는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에 속한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호시탐탐 나의 역량을 뒤에서 앞에서 평가하는 선배와 상사들의 눈초리가 못 견디게 따가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이 조직을 벗어나면 사회에서 도태될 것만 같은 그런 불안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잠을 설치는 밤이 잦아지고, 한숨이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답답한 시기가 있다. 이런 때를 두고 슬럼프라고 하는지 번아웃이라 하는 건지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지만, 분명 챕터 하나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때가 온 것 같긴 하다. 나는 맛있는 반찬을 아껴먹던 어린 시절의 식사 시간을 기억한다. 그 안에서 즐기던 작은 성취감과 즐거움 또한 기억한다. 그 단순한 즐거움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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