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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Oct 14. 2020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No.7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난 소감을 조금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브런치에 올린 저의 몇몇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제가 경어체(-‘습니다’체)가 아닌 평어체(‘이다’체)를 쓴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번 독후감은 이 책이 번역된 투를 따라 경어체를 쓰기로 했습니다. 경어체는 조금 더 부드럽고 친절하고 배려 깊은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마치 그녀 자신, 버지니아 울프처럼 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태어났습니다. 저는 100년 뒤, 그러니까 제가 존재하지 않을 시대에 대해서 깊게 고찰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시대를 통찰하는 진취적인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사회가 발전해 나갈 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꿈꿉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자세로 삶을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찰하고 비판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그녀만의 값진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마지막 장을 읽으며 그녀에게 백 년을 더 주자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를 주자, 그녀가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지금 쓴 것의 절반은 빼버리도록 허용해 주자, 그러면 그녀는 조만간 더 나은 책을 쓸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메리 카마이클이 쓴 ‘생의 모험’을 서가의 끝에 꽂으며 그녀는 시인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백 년이 지나면 말이지요.
 - p143


 울프가 살던 시대에는 여성이 돈을 버는 것이 불가했고, 설사 돈을 벌었어도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영국 사회는 교육받은 남성에 의해 구성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명예를 지닌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기란 불가했습니다. 여성은 전문직에 종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울프는 교육받은 여성들에게 책을 쓰라고 권합니다. 그것은 여성이 소유할 수 없는 재산 중에 유일하게 소유가 가능했던 지적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그녀는 잘못된 제도와 편견 속에 개인이 갇혀있을 때 할 수 있는 행위와 노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도 100년 뒤 후손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어떤 고집스러운 편견 속에 갇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항하는 개인의 움직임 중 하나는 쓰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녀는 살아있는 예술가들의 아직은 값이 싼 예술작품을 수집하기를 바랬고, 책을 쓰기를 바랬습니다.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것은 취향과 안목을 기를 수 있게 하고, 책을 쓸 땐 생각을 정리하고 철학적인 사유를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 행위의 중요성을 울프는 알고 있기에 책 속에서 자주 역설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p.164


그리고 그 곁에는 돈이 있습니다. 저도 요즘 돈과 자유의 상관관계에 대해 종종 생각합니다. 돈은 제가 취미를 즐기고 사람들을 만나고 취향을 향유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형태를 유지하고 살아나가기 위해서 얼만큼의 돈이 필요하며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것은 나만의 인간상을 만들기 위함이며 울프는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질문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 얼마일까요? 그리고 그 돈을 소유하기 위해서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돈을 벌 수 있음이 젊음의, 남성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유의 본질을 누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혹자는 그녀를 '페미니스트'라며, 이 책이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규정짓기 전에 이 책에는 모두에게 닿을 즐거움이 있습니다. 글이 쉽게 읽히진 않지만 조금은 해체적인 글귀 속에서 보석 같은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 일일이 찾아보는 수고를 하진 않았지만 정의와 자유, 평등을 추구하고 이를 몸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합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유롭습니다. 사적인 영역에서 글을 쓰는 행위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누구보다 알고 그것을 실천해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100년 전 그녀가 바라본 편견과 불합리를 목격할 수 있었고, 이러한 탐구의 빛을 통해 지금을 조명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자신의 성을 칭찬하는 것은 항상 수상쩍고 종종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녀는 세계의 다양함과 차이점을 인정할 줄 하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전쟁을 겪어야 했고, 재산을 모을 권리가 없었고, 자기만의 방이 없고,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 없이 살아가야 했던 그녀가 이 시대를 경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든 때론 단호하게 나의 의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설사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더라고 그러한 사고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하고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로 저는 이 책 전반에 녹아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의견에 귀 기울였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하는 즐거움을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 성(性)에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때 빛을 발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또한 말합니다.

"발끝으로 걸어서는 아주 멀리까지 나아갈 수 없겠지요."

우리는 발끝으로 걸어서는 안됩니다. 한걸음 한걸음 체중을 눌러 담아서 걸어가야 합니다.


더 멀리 가기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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