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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Mar 28. 2020

태고의 시간들 - 올가 토카르축

No.6

이번엔 폴란드를 여행했다.

세계 대전으로 세상이 붉게 물들던 그 시절, 폴란드 ‘태고’를 다녀왔다. 먼 나라 작가 올가 토카르축은 미하우, 게노베파, 미시아, 파베우... 이름도 생소한 인물들의 시간을 나에게 하나씩 들려줬다.


아주 먼 옛날이라는 뜻의 ‘태고’는 가상의 공간이다. 이 책은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태고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주체들의 삶을 개별적이고 유기적으로 펼쳐낸다. 각 챕터는 ‘시간’으로 분리된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사물의 시간, 동물의 시간, 신의 시간, 공간의 시간 등이 차례로 등장하고 이러한 지류들이 모여 이야기는 하나의 커다란 강줄기가 된다.

세대를 넘나드는 긴 호흡의 서사를 읽을 때면 애정 하는 주인공이 수시로 바뀌고 만다. 처음에 만난 주인공에 흠뻑 빠졌다가도 그의 장년, 노년기를 넘어 다음 세대 인물이 등장하면 내 시선은 어느새 그 2세에 집중된다. 그들이 자라서 또 시간이 흘러 3세가 등장하면 이야기는 이제 이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쯤 되면 나와 처음으로 만났던 주인공은 어느새 아득한 존재가 되어 있다. 책 속의 인물이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맺음 짓는 장면까지 지켜보다 보면 책에 몰입되는 깊이가 남다르다. 정말 태고부터 있었던 어떤 존재처럼 그들의 모든 것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애정 하던 주인공이 스러질 때, 나도 함께 숨죽였다. 몰입은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게노베파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야만 했다. 트럭들이 모두 떠난 뒤, 게노베파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공유지를 가로질러 갔다. 다리가 돌처럼 무거워서 의지대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물에 젖은 치맛자락이 자꾸만 그녀를 땅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앨리는 잔디밭에 웅크린 채 쓰러져 있었다. 게노베파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가까이서 그를 보았다. 그녀는 엘리 옆에 주저앉았다. 그날 이후 게노베파는 다시는 걷지 못했다.”


산과 바다 중에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물으면 난 주저 없이 바다를 택한다. 바다의 광활함은 시야를 탁 트이게 하는 힘이 있고, 잔잔한 수면 밑에는 미지의 세계가 숨 쉬고 있을 것만 같아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바다는 나에게 따뜻하고 강렬한, 가깝지만 먼 공간이다. 산도 산대로 매력이 충분하다. 비교를 하자면 바다를 더 좋아할 뿐이다.

그런데 숲은 산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다. 산은 상승의 이미지인데 숲은 원형의 이미지다. 어딘가 비밀스러운 ‘숲’은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태고라는 마을을 둘러싼 숲은 초현실적인 공간이자 상상력을 자극하는 세계이다. 몽환적이고 독특하고 어둡고 축축하지만 생명이 잉태되는, 가장 태고스러운 곳이다. 나는 책을 읽다가 이 신화적인 공간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태고는 세계대전을 목격했고, 유대인 학살, 냉전, 사회주의를 지켜봤다. 어느 시대가 ‘더’ 불행한지 저울질 하기는 어렵겠지만 한 인간의 짧은 인생사에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학살이 자행되고 이데올로기의 격변기를 목격하는 것은 아무래도 비극에 가깝다. 우리도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기에, 나는 근현대사 시간에 보았던 역사적 사건들을 시공간만 다른 태고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태고는 폴란드만의 공간도, 가상의 세계도 아닌 우리 모두의 공간이자 시간이었다.


“그들은 전장의 총성을 함께 들었다. 대부분은 코투슈프 부근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하지만 때로는 사방이 흔들릴 대도 있었다. 그건 포탄이 태고 마을에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밤이 되면 이따금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쩝쩝거리는 소리, 중얼거림, 그러고 나면 인간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빠른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미하우는 무서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뛸 때는 옆으로 돌아 누웠다. “


책을 읽었다고 그 책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한동안 푹 빠져서 읽고 나서도 막상 다시 감상문을 쓰려고 자리를 잡으면 머리가 하얘진다. 내가 어떤 걸 느꼈는지,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충분히(?) 감상한 게 맞는지..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잡아서 글로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제일 처음 마주하는 고민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러나 태고의 시간들을 읽고 나서 ‘나의 시간’으로 돌아오니 한 가지 주제를 찾아내야만 할 것 같은 90년대 수능세대의 내 습관이 슬며시 나를 압박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을 충분히 즐겼고, 그걸로 됐다.

읽고 감상을 털어놓는 것에 상상력이 필요친 않다. 그러나 한 작가의 상상력은 이렇게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내고 제각기 다른 글들을 파생시킨다. 상상력은 힘이다. 그것도 강력한 힘이다. 파울료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는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걸 돕기 위해 힘을 쓴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책에서 나는 비슷한 구절을 발견했다. 맥락은 달랐지만 분명 상상력에 대한 힘을 주는 이야기였다.


 “상상이란 따지고 보면 창작의 일부이며, 물질과 영혼을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와 같다. 특히 빈번하게, 집중적으로 할수록 그렇다. 이런 경우, 상상은 물질의 파편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삶의 기류에 융합되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뭔가가 뒤틀리면서 변화가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은, 그것이 충분히 강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침체된 시기에 하루빨리 모든 게 안정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상상해 본다.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분들께 태고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20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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