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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Jun 14. 2021

애써 온 시간의 쓸모를 찾아 기뻤어

하드디스크 정리하며 만난 6월 13일의 기쁨

오늘 예배시간, 목사님께서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계속 기회주고 계심'기억하라 하셨다.


속으로 막연한 동의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졌지만,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내게 큰 기회였음이 새삼 기억났기 때문이다.


사회학이라는 순수학문을 공부하던 대학원생에서,

기획직무를 다루는 직장인으로 커리어 쉬프트를 원했던 내게 지금의 직장은 아주 훌륭한 중간지대였다.


또 논문의 연구대상으로 현재 일하는 '세운일대'를 수도 없이 방문하면서,

이 곳이 잘 되는 일에 진심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싹 텄더랬다.


오랜시간 지역을 지키며 삶을 일궈온 어른들의 시간이 '낡은 과거의 시간'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 시간을 충분히 축복하고 인정할 뿐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축적의 시간임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달까.

지역이 잘 되는 일에 기여하면서, 경력까지 쌓을 수 있으니 '기회'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어리석게도, 이런 귀한 발자국, 마음가짐들은 일상의 바쁨에 쉬이 묻혀버린다.

예배가 아니였더라면 완전히 잊었을 마음들.


그런데 두 배로 감사하게 비단 지금의 직장 뿐 아니라 내가 걸어온 많은 시간들이 '계속 기회주신 시간' 이었음을 이 밤, 발견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휘발되어 버릴까, 바쁘게 기록장으로 달려왔다.


저녁시간 부터 하드디스크를 정리하고 있었다.

하드디스크 정리는 이 시대의 앨범 정리 같은 것이다. 목적은 정리였는데 하다보면 추억여행이 되어버리는.

나 역시도 "와, 나 이런 프로젝트도 했었네", "와 나 이 때 나 정말 어렸네"

감탄을 연발하며 추억여행을 하고 있었다.


사실, 오전 예배 때 되새긴 마음같은 것은 이미 잊은 상태였다. 다시 말씀을 떠올린 건 자소서 폴더 덕분이다. 취업준비 시간은 내게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대체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많이 고민했지만 도통 모르겠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시간을 자주 '방황'이라고 불렀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했다.


자소서는 그 시절의 애쓴 기록이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에, 상 주기에는 애매한

아픈 손가락 같은 것이었다.


4년 여만에 읽어본 내 자소서에는 그런 고민, 방황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참 많이 애쓴 글 속의 내가 대견했다.


대견한 마음에 죽 읽다보니, 더 큰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았다고만 생각했는데, 미세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원 지원서에 나는 "사회학을 공부해서 깊이 있는 기획자가 되겠다." 고 썼다.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부터 저것이 나의 목표였던 것이다.

학문에서 커리어로 전환하려는 지금의 시도가 생뚱맞은 것이 아닌, 처음부터 나의 목표 였던 것이다.

저 문장 하나에 "잘 하고 있다."는 깊은 안도감이 찾아왔다.

 

또 어떤 자기소개서에는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지역문화를 만들겠다." 고 썼다.

이제 보니 기업에서 왜 떨어트렸는지는 알겠다만... (웃음)

결국 내가 원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구나 하는 기쁨이 밀려왔다.


산발적이고 무작위하다고 느껴온 나의 걸음들이 실은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걸음걸음은 하나님께서 계속 기회주신 시간이었다.

 

오늘의 발견은 "자꾸 옆사람 말 듣지 말고, 지금 가려던 길 계속 가도 괜찮아."라는

단단한 내면의 소리를 선물해줬다.

잘하고 있고, 함께 하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강한 응원!


헛된 시간이 한자락도 없었음을 발견해 기쁘고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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