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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May 07. 2022

자연을 마주하니, 진짜 내가 보였다.

Hokma Gim 개인전 <개개인의 섬들> 관람 후기

4월 29일 금요일, 조금 일찍 퇴근하고 역삼동 adm 갤러리로 향했다.

Hokma Gim 작가의 개인전 <개개인의 섬들>을 보기 위해서다.

ⓒADM Gallery

그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우연히 접한 Hokma 작가의 작품은 볼 때마다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숲, 나무 등 나에게도 항상 영감의 원천이 되는 자연물이 작품에 등장한다는 점, 아름다운 색감으로 마음까지 환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한지, 분체 등의 동양화 재료를 자유롭게 이용한다는 점이 좋았다.


한국에 사는데도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 더 익숙했던 내게, 한지 위에 그려진 그림은 신선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 종이의 질감은 온라인에서는 보이지 않고 직접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것인지라 오프라인 공간에서 열리는 개인전이 퍽 반가웠다. 게다가!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제주도에서 살면서 만난 제주의 자연을 담은 그림이 많다는 것이다. 바람과 파도를 이겨낸 제주의 자연은 또 내가 사랑해 마지않은 것이기에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전시장은 입구부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심하게 박스 위에 그린 그림과 소라를 닮은 오브제가 포스터처럼 붙어 있었다. 바닷가에 떨어진 예쁜 조각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 모습은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전시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무심하게 반겨주는 벽면의 작품

adm 갤러리는 여느 전시장처럼 벽면과 바닥 모두 새 하얀 갤러리였는데, 그렇다 보니 쨍한 색감을 자랑하는 호크마 작가의 그림이 더 돋보였다. 청록색을 많이 사용한 대형 그림들이 메인 그림으로 걸려 있었고, 전시장 중앙에는 작가가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사용했던 작업 노트, 영감이 됐던 사물들, 크고 작은 오브제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크고 작은 작품들을 꼴라쥬 해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프레임 월!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청록, 파랑이 돋보이는 그림들을 중심으로 붉은색, 노란색 등이 사용된 크고 작은 그림들이 함께 걸려있었다. 크고 작은 그림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것이 전시를 보는 재미를 더했다.

전시장의 모습 프레임 월이 돋보인다

나중에 작가님께서 어떤 것들을 그렸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줬는데, 한 마디로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사랑했던 장면들과 그리워했던 대상들을 하나하나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제주도에 가게 된 건 홀로서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제주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홀로 우뚝 서 있는 섬의 모습이 자신과 꼭 닮았다고 느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 작가가 제주에 가기 전부터 자주 그렸던 '나무' 역시도 고유한 생을 가진 '사람'을 은유하는 존재다. 자라고, 죽는 생을 겪으며 그 생의 과정을 전부 나이테로 간직한 나무가 사람과 참 닮았다고 느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무 간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각각의 나무들이 건강한 숲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나,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가 건강하다는 점까지도 인간의 생을 닮아 있었다고.  


작가는 형용할 수 없이 거대한 자연 앞에 서서, 진짜 나를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전시에는 제주의 자연 앞에 홀로 선 작가의 그림자가 보이는 그림들이 몇 점 있었는데 그 그림들의 작가의 마음을 대변해준다고 느꼈다. 압도적인 생명력을 뿜어내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단순히 나는 굉장히 작은 자연의 일부구나 라는 감상만을 느끼는 대신, 개개인의 사람들 역시도 압도적인 생명력을 내면에 품은 자연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다시 말해 자연을 온전히 자신 안에 담으며 모종의 일치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봤다. 생의 에너지는 내면을 치유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테다.

JEJU ALONE by HOKMA GIM ⓒADM Gallery

복잡하게 썼지만, 자연과 교감하며 스스로를 발견한 작가의 시간이 또 눈물 나게 좋았다는 이야기다.

를 위해 큰 돈을 쓴다면 그림을 사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호크마 작가의 전시를 다 보고 나니,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제주 바다의 노을을 담은 작품 한 점을 사고 말았다! (내 인생 첫 그림 구매)


대체 사겠다고 결심할 만큼 좋은 점이 뭐가 있지? 스스로 설득하기 위해 적어 봤다.


1. 아름답고 이해하기 쉬운 그림

호크마 작가의 그림은 일단 한눈에 봐도 예쁘다. 청록, 파랑을 중심으로 다양한 색이 과감하게 어우러져 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멀리서 봐도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더 아름답다. 단순히 청록색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색을 섞어서 그림을 완성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회색 물질들도 보이는데, 그 은은한 반짝임 조차도 자연을 닮았다. 흙도 가만히 바라보면 광물들이 은은하게 빛을 내는데 그런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또 작가가 제주도에서 만난 장면들을 담은 그림이 많다 보니, 제주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보자마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이 많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 갈대밭에 비친 그림자나 노을 그림을 봤을 때 내가 홀로 떠났던 제주 여행을 단박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림의 문외한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너무 어려운 그림보다는 아름답고 이해하기 쉬운 그림이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SUNSET TIME ON MY OWN SPOT AND I AM HERE ALONE by HOKMA GIM  ⓒADM Gallery


2. 기법을 이용해 표현한 비판적 목소리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풍경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은 내가 호크마 작가의 그림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 걸린 대형 작품 중 <Social Distancing>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일정한 가격으로 늘어선 나무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작가에게 나무는 곧 사람이기에 코로나로 인해 망가진 일상을 나무를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재미있는 건 이 작품 작업 시작 전에 그림 전체를 한 번 구긴 후에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종이를 구김으로써 망가진 일상의 모습을 한 겹 더 담아낸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구겨졌던 흔적도 볼 수 있다. 의미와 제목을 모르고 봤을 땐 그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숲을 그렸다고 느꼈던 작품에 숨겨진 의미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역설? 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이 외에도 기포를 이용해 제주 해양오염 실태를 지적하고자 한 pado 등의 작품이 있다.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작가의 시선과 비판적 목소리를 영리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작품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Social Distancing  /  Blue Green Forest


3.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순한 곡선과 구도

작가는 나뭇잎 한 올 한 올을 세밀하게 그리기보다 단순한 곡선을 이용해 나무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나무뿐 아니라 한라산을 표현할 때도, 갈대를 표현할 때도 작가는 단순한 곡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하게 표현된 자연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게 뭘까? 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가 하면 대상을 과감하게 클로즈 업한 구도의 그림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의 반려견 보리를 그린 작품이다. 언뜻 보면 모래사장을 그린 것 같은 이 작품은 사실은 보리의 털을 클로즈업해 그린 작품인 것. 단순화된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클로즈업된 구도도 관람객이 상상할 폭을 넓혀 준다. 상상하는 것이 예술 관람의 또 다른 묘미 아니겠는가!

단순한 선과 구도가 돋보이는 호크마 작가의 작품들


아무튼 그냥 너무 좋다.


기회가 된다면 방문해보시길 강력 추천하다.

<개개인의 섬들> 전시는 5월 11일까지 adm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Individual island — ADM GALLERY


※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전문적 견해가 아닌 개인적 감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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