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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러스 Mar 31. 2023

세상에 당연한 상식이란 없다

때로는 비판적인 자아성찰이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법



1.

현재, 회사의 기획팀에는 총 세명의 팀원이 있다. 대부분의 팀원들이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팀원 교육과정에서 나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게되는 경우가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상식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다. 회사 자체가 추구하고있는 지향점이 높다보니, 연차에 비해 높은 난이도의 서비스를 설계해야하고, 그걸 배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해진다. 그리고 그걸 견뎌내야하는 팀원들의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제대로된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렇다보니 생각보다 자주, 다양한 범위에서 IT 관련 교육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육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이 사람은 이걸 왜 모르는거지?' 와 같은 -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는, IT환경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배우기가 어렵거나, 아무도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더욱더 답답함이 느껴질 때가 많은데, 그걸 듣는 팀원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이야기들이다. 세상에 당연한 상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고, 얼마나 이해를 헀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업무를 반복하는 과정이 이어지곤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스스로 여러가지 현실적 문제점을 깨닫게됐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많은 내용을 업무 과정에서 알려줘야할줄이야. 그렇게 교육이 반복되다보니 점점 야근이 늘고, 대표님의 요청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나자신도 계속해서 지쳐가고, 답답함이 쌓여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선택한 - 이 회사의 생존방식이 아니던가? 단지 '이정도 수준으로 문제가 심각할줄은 몰랐던 것 뿐이지.'



2.

팀원에게 내가 알고있는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대체 나는 이 내용을 어째서 알고있는가' 에 대해서 의문이 드는 것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내 스스로 잡다한 내용들을 파악하고, 공부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 지식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지식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보니 팀원에게 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지식기반이 필요한지. 또다시 어떤 것들을 연계해 설명해야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했다. 지식의 규격이나, 정보단위가 아니라, 지식을 얻게된 계기나, 학습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되돌아봐야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개발자와의 협업에 익숙하지 않은 팀원에게 '개발자의 관점'을 배우게하는 일도, 상당히 골때리는 일이었다. 기획자가 대부분  해야하는 일이 - 개발자의 관점에서, 그들이 고려해야할 지점을 파악하는 일이니까. 그 기반을 설명하기 위해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시스템이 바탕을 갖고있는 OS와 디바이스, 개발언어에 대해서도 설명을 진행해야했다. 적어도 Java와 Javascript, Python과 C / C++에 대해서는 꼭 설명이 필요했다. 나는 아직도 이 내용들을 '내가 제대로 설명한게 맞는지' 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심지어 그것들을 바탕으로 '어떤 개발자가 필요한가에 대해 팀원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그것을 갖고 다시 '클라이언트에게 제안이 가능한 레벨'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심지어 제안서를 작성하는 것 또한 가르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기반 지식이 부족한 팀원들에게 내가 썼던 것과 동일한 수준의 무언가를 요구하는게 가능할리 없었다. 그러니 글쓰기에 대해서도 '내가 작성했던 제안서들'을 보여주거나, 관련 서비스를 조사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 단계를 밟게 해야했다. 기획자 성향인 팀원이 아닌 - 디자이너 성향의 팀원들에게는 그런 과정조차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들이 모두 제안서를 쓰게 되는 때가 오려면, 어떤 것들을 배워야할까?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서 그들을 교육해야하는걸까? 나는 그런 교육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충분한 지식과, 자아성찰, 경험이 충분한 사람일까? 여러가지로 의문이 들었다.


그 고민이 시작된 순간 부터, 글을 써내려갈 수가 없었다. 내가 남을 가르칠만한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3.

짧은 기간 안에, 누군가를 가르쳐야한다면. 그것도 한두명이 아닌 사람들을 모두 가르쳐야한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을 때. 한가지 생각만이 머리를 맴돌았다. 내가 왜 이 역할을 자처한 건지. 내 선택이 정말 옳았던 건지에 대한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논리적으로야 이런 시간이 반복되고, 교육이 필요한 게 맞다는걸 안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해내야하는 역할로서는, 너무나 힘겨운 내용들이 많았다. 상대의 상황과, 지식수준, 해야하는 업무에 맞춰 내용을 정리하고, 설명하고, 또 정리하기를 한달여간.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일을 하는건지, 아니면 공부를 하는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새로운 지식과, 여러가지 내용들을 배우고는 있지만. 나조차 새롭게 배운 것들을 지식으로 정리해 전달하거나, 다시 압축해 누군가에게 알려줘야하는 상황이. 점차 내게 부담이 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알게된 내용들을 조사하고, 제안서를 작성하고, 미팅에 나가서 설득을 해야했다. 심지어 그 내용을 압축해 개별 팀원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내 역할이었다. 3개의 프로젝트, 신규 제안서와 외부 개발팀과의 커뮤니케이션까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마다 몸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팀장으로서 해야할 일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했다. 그러나 이미 시작한 일이니까. 도중에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팀장의 역할이 - 내게 성장의 기회가 되어줄거란 건 알고있었다. 단지 그것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반복할 수 있는지. 그것을 지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영역의 내용이었다. 팀원들을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계속해서 가르쳐야했다. 게다가 내 역할을 하면서도, 팀장이 해야하는 일들도 배워내야했다. 혼자서 해낼 수 있을까, 이걸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도 - 그것들을 해내고 결과를 보여줘야했다. 그것이 너무나 부담스러웠고, 동시에 마음 속의 무거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게 내가 선택한 방향이었기에, 다른 누군가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달이 넘게 그런 고통과 고민이 함께 섞여들다보니, 나 스스로도 한계에 도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특정 시점부터, 더이상 깊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했다. 그게 정말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도하게 닳아오른 머리를 식히는 단편적인 방법은 되었던 것 같다.



4.

머리를 비우기 위해 생각을 멈췄다. 그래서 거의 2주간, 제대로된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쓰기 위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해봐야 더욱더 복잡해질 뿐이니까. 내가 글을 통해 말할수 없는 것들을 굳이 활자로 남길 필요가 없었다. 마음 속 침전물이 가라앉고, 핵심적인 지점들만 남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서야 그 뒷편을 되돌아보니, 내가 무엇을 고민해왔었는가가 보인다. 나는 내가 생각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들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와, 흙바닥을 구르듯 반복해야하는 일들에서 갑갑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예상한 건 이보다 더 나은 결과였으니까.


여전히 나는 내가 만들어낸 결과에 만족할 수 없다. 아니, 그동안 들인 노력과 에너지에 비해, 만족스러움을 느끼기가 어렵다. 심지어, 이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문제를 해결해야할거라는 걸 안다. 단지 그것이 또다른 좌절과 견디기 어려운 회의감으로 물들어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할 것들이 있다. 내가 과연 충분한 준비가 되었었는가를. 내가 진행한 방식이 최선의 방식이었는가를. 다시한번 되돌아보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것들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무슨 선택을 했는지. 어떤 것들을 더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했는지를 파악해보아야한다. 내 스스로 '효율적이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그중에 놓아버리지 말아야할 것들은 없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될 때 까지 하면 언젠가는 되는게 사람 일이지만. 그걸 위한 더 나은 전략은 없었는지. 내가 선택하지 못한 방향성들 중에, 가능성이 있는 길은 없었는지. 하나하나 되돌아보며 확인해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언제나, 유쾌하지 못한 결과를 되돌아보는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난제를 겪게되었을 때. 비슷한 문제를 겪거나, 그보다 악화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애초에 그 문제가 타인이 아닌 '나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문제를 통해 나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그 잘못이 무슨 결과값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알게된다. 결국에는 내가 무얼 잘못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걸 납득하게 될 것이다. 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따름이다.



-


속이 불타듯이 타들어간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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