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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Jun 07. 2020

완벽한 타인 - 어설픈 포커판, 식상한 소극


인간은 서로에게 철저히 타인이라는 당연하고도 뻔한 얘기를 빙 돌려 얘기한다. 그 결론에 이르는 이야기 역시, 내러티브에 약간의 실험을 가미했다는 것 말고는, 당연하고 뻔하긴 마찬가지다. 


'완벽한 타인'은 각자의 비밀을 히든카드로 숨긴 채 벌이는 포커판에 불과하다. 식탁에 앉아 서로를 떠보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어설픈 도박꾼의 불안을 감출 수 없다. 그 불안이 극에 이렇다 할 긴장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 얼마나 관계 앞에 나약한 존재인지 되새기게 해줄 뿐이다. 게다가 숨긴 카드 역시 그리 대단하지 않다. 불륜은 비밀이라기엔 너무 식상한 소재다.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고, 이를 남에게 들킨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다. 휴대폰 속 개인사에 완벽하게 자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밀이 우리를 타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비밀과 거짓이 없는 완전무결한 상태에서도, 너는 내가 아니기에 결국 타인이다. 



'완벽한 타인'이 취하는 야심은 스스로 갖고 있는 이야기의 깊이에 비해 과하다. 블랙코미디 흉내를 내지만 헛웃음만 나오는 그냥 '소극(笑劇)'일 뿐이다. 마치 이야기를 겹겹이 쌓은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갖고 있는 척하지만, 그저 불륜극, 치정극일 뿐이다. 오히려 더 치밀한 일상 연기가 필요한 장면들에서 배우들은 별 고민 없이 전형적인 인물상을 흉내 내는 데 급급하다.


다만 '완벽한 타인'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만듦새에도 불구, 의미 있어 보이는 부분은, 이런 류의 심리극이 국내에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보면, 그럭저럭 영화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인물들을 한정된 공간 안에 몰아넣고, 연극 무대에서처럼 각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그간 우리나라에선 별로 없었던 시도다. 한국 영화에도 이런 시도가 계속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비슷한 시나리오에 소재만 바꿔 끼운 콘셉트 중심의 영화만 볼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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