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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Nov 29. 2020

정글 - 처절한 생존 모놀로그

Jungle, 2017


누구나 한 번쯤은 틀에 박힌 삶에 대한 거부감이 한껏 차오를 때가 있다. 그것은 때때로 색다른 경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런 동경을 품었다고 해서 누구나 오지 탐험을 나서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정글' 실화의 주인공인 요시 긴스버그(다니엘 래드클리프 扮)는 숨겨진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아마존 정글에 발을 디디게 된다. 과연 그는 이 여정으로부터 무언가 깨달음을 얻게 될까? 흔히 얘기하는 '자아 찾기'에 성공하게 될까? 실제 요시 긴스버그가 정글 속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메시지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훗날 그가 아마존을 다시 찾아 정글의 생태 및 원주민을 위한 각종 사회 운동을 벌인 것을 보면 뭔가 찾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영화 속에서도 이렇다 할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영화가 하려던 얘기도 정글에서 함께 조난된 게 아닌가 싶다. 주인공 요시와 같이 구조되지 못하고 영영 실종된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동경과 처절한 생존 끝에 얻은 깨달음에 대해 일말의 설득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대에 부푼 얼굴로 정글로 들어가 처참한 몰골로 구조되기까지 관객은 어느 것에도 설득되지 않는다. 차라리 그나마 설득이 되는 것은 요시의 친구 케빈(알렉스 러셀 扮)의 행보이다. 사진작가인 그는 일생일대의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정글에 들어선다. 납득이 된다. 하지만 영화 중반 이후 요시의 생존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케빈의 이야기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영화 '정글'은 실화에서 스토리를 찾아내는 데도 실패했다. 원작자의 바람대로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담아내는 데 충실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기엔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내내 끼어드는 환상, 환영, 플래시백이 다소 뜬금없다. (장 마크 발레의 '와일드'와 같은 영화가 플래시백이나 환영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캐릭터와 연결하는지 보면, '정글'의 부족함이 더 확연히 드러난다)


극한 상황에 몰리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다고들 한다. 그런 점에서 생존 영화는 이야기 속 캐릭터를 구축하고 인간성의 의미를 고찰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글'은 장르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고, 그게 무엇이든 만들다 만 느낌이다. 미지에 대한 동경, 어리석은 인간의 만용, 브라더후드, 극한에서의 자아 발견, 기적과도 같은 생존기 등 모든 것이 미완성인 채로 끝나고, 오로지 인간의 생존 의지만 강렬하게 남는다. 


정글이라는 공간의 의미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시계도 지갑도 필요 없는 날것 그대로의 공간이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가혹한 환경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극복의 대상인지, 경외의 대상인지 분명치 않다. 정글에선 길 잃을 일도, 굶주릴 일도 없다는 허황된 말에 속은 주인공처럼, 관객은 영화가 담아낸 자연 풍광에 속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에는 뭔가 환상이 채워지는 것 같지만, 잠시뿐이다. (실제로 영화는 일부는 볼리비아에서, 나머지 대부분은 호주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정글을 무대로 한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처절한 모놀로그가 되고 만다. 래드클리프의 헌신적인 연기가 내러티브의 구멍을 열심히 메워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어떤 면에서는 해리포터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처럼 보여 안쓰럽기도) 최근작 '프리즌 이스케이프(Escape From Pretoria, 2020)에서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연을 맡았는데, 탈옥 소재의 영화라 그런지 절박한 느낌이 비슷하다. 


조금 더 방향이 확실한 연출을 만났다면 좀 나았을까? B급 호러 중심의 필모그래피를 가진 감독이 왜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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