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미래의 나에 대해 자주 상상해보곤 한다. 과연 미래의 나는 살아 있을까부터 시작한다. 급변하고 있는 이 시기에 맞춰서 적응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구보다 빨리 예술 쪽으로 내 적성과 진로를 정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경 없이 이어져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점으로는 누구보다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이상하다. 어째서 남들보다 빨리 적성을 택했고 그대로 이어서 해오고 있는데 남들보다 사회적으로 적응을 하지 못한 걸까? 예술을 한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
미래에는 자신의 기술 혹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욱더 빛을 바랄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그 기준에 꽤 잘 맞는 직업 아닐까? 이러한 자기 합리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공의 여부보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며, 작업한다. 이건 로또를 살 때의 느낌과 꽤 비슷하다.
아마 TV였던 것 같다. 혹은 유튜브였을 수도 있다. 작가 혹은 예술가는 직업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에 정말로 동의한다. 예술가는 직업으로 유지하기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언제든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예술을 하는 친구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고는 싶은데 유지할 수 있는 길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불안함은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불안감이다. 예술가는 정해진 일의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백이면 백 너무나 다르게 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기술이나 재능에 반비례하는 분야이다. 배우도 투자하는 기간이 길지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예술가로 존속하기 어렵고, 재능이 크게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또한 노력하고 열심히 한다 라는 말만큼 의미 없는 곳이 이 분야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운 안에는 정말로 많은 요소가 담겨있다. 정말로 그렇다. 재능이라는 것이 빛을 보기는 너무나 어렵다.
그가 배우로서 소년 미가 없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대신 일을 했다.
이 말 역시 방송에서 한 배우의 아내가 한 말이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예술적 재능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존재하지만 꾸준히 유지하지 않으면 어느새 없어지고 만다. 이것은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도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어릴 때 굉장한 재능을 가진 아이가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지나 평범한 사람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예술가들은 이런 것을 잘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예술을 이어나가야 한다. 문제는 계속해서 예술적인 영감을 받는 생활이 여유를 담보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여유라는 것이 여러 가지로 예술가에겐 중요한데, 사회적인 노동을 하다 보면 여유라는 것을 곁에 두기 어려워진다. 사회적인 상대적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사회 안에서 이런저런 예술과 관계없는 일을 하다 보면 이 예술성은 점점 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여유가 없는 예술가에겐 악순환이다.
예술을 하기 위해선 사회의 일을 해야 하고, 사회의 일을 하면 예술성이 점점 준다. 예술성을 유지하고 늘리려면 예술을 해야 하고 그러면 삶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다시 사회의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다시 예술성이 줄어든다.
나는 아직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꽤 높은 확률로 못 찾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