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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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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Aug 04. 2023

이 모든 여정에 감사하다.

채우기 시리즈 14.

다사다난했던, 고 3 아이들과의 수업 마지막날.



이날은, 그동안 수능이 100일도 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꿋꿋이 프로젝트를 끌고 왔던, 유일하게 남은 한 팀의 최종 결과물을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다른 회차 때처럼, 전체 출석률이 60%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과는 달리,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요.


저는 발표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하게 됩니다.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찾아 나섰던


그 과정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이야기해 달라고 말이지요.



비록, 외부 환경적 이슈들로 인해, 프로젝트 결과물이 수업 기간 내에 명확한 성과를 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봤던 그 과정 자체가, 수업에 불참했던  다른 아이들에게 굉장히 큰 영감을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표자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저는 순간,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친구가, 영상 편집 능력자였는데요. (참고로 애플을 매우 사랑하는 친구였습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개인적인 노력의 과정들을, 심플하면서 몰입도 있는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발표 시간이 7분이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모든 친구들이 숨을 죽이고 이 아이들의 과정에 집중했습니다.



이 멋진 발표가 끝나자,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감상평을 요청하게 됩니다.


한 친구가 말하길, 처음엔 입시에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도대체 이 수업이 뭐라고 이렇게들 열심히 하나 싶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오래 못 가고,  프로젝트가 망할 줄 알았다고 했어요.


하지만,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남아서, 방과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러 시도를 하던 그 과정들이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가 된 사실이 너무 놀랍고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끌고 갔던 친구들은


어느 누구 하나, 제가 강제해서 남아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남아 있었던 건데요.



현재 시점에서 되짚어 봤을 때,


이 아이들이 끝까지 프로젝트를 완주할 수 있게 도운 가장 큰 첫 번째 요인은


수많은 이들이, 온 마음을 다해 그 과정을 지켜보고 지지해 줬기 때문입니다.


귀찮은 설문조사지만, 아이들의 프로젝트를 위해 묵묵히 참여해 주시던 선생님들,


수업에 모두 참여하지 않더라도, 중간 과정을 서로 공유하며, 더 나은 해결책을 맞대게 도와준 친구들,


뭔가 엄청난 아이디어나,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될지라도, 외롭지 않게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던 팀원들,


수많은 이들이 조금씩 힘을 모아 이들의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줬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끌고 갔던 친구들은, 결과보다는 그 과정자체를 즐길 줄 아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19살은,  대부분 대입이라는 하나의 평가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아마,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면,


이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청소년으로서의 마지막 시기에, 딱딱한 학교 책상과, 학원에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고 있진 않았겠지요.


제가 입시를 치렀던, 14년 전과 이 아이들을 지도하는 현재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걸 보면,


빠른 성장을 중요시하는, 한국의 문화와는 대조되게, 유독 입시에서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친구들은, 14년 전 저와는 달리, 인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는 존재들이었지요.


특히 이 프로젝트의 리더 친구의 인생에는,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학교 방송부 출신으로, 다양한 영상 편집 및 교내 방송 진행 경험이 있는 능력자이자, 바쁜 고삼 생활이지만, 자기가 좋아서 밴드부까지 했던 친구인데요.


이미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즐거워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굉장한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는 이 다사다난한 여정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지켜나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옆에서 지켜보며,



비록 저는 수업을 하러 왔던 입장이었지만,

되려  제가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수업이 모두 종료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떠난 교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친구들과, 저는 따로 남아, 최종적으로 연합공유회에 제출할 영상을 찍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도했던 수업은 특정 재단의 후원을 받아 전국의 총 10개의 학교에서 동시 진행되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래서 12월에 이 수업을 들었던 모든 학교들이 다 같이 모여, 과정도 공유하고, 우수 프로젝트 시상식도 있을 예정이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연합 공유회에서 우린 수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 과정을 완주한 것 자체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아이들과의 고군분투한 시간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지요.


작년 12월에 있었던, 연합 공유회에 가던 전철 안에서 제가 쓴 글을 공유해 드리며, 고잉홈 프로젝트의 두 번째 여정이었던 [채우기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저에게 정말 정말 감사하고 귀한 날입니다.


1년 전, 이 시기에 저는 엄청난 용기를 내 퇴사를 했었습니다.


그 당시엔 모아둔 돈도 없고, 정해진 방향도 없었지만 확실한 건, 더 이상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진실하겠다는 다짐을 지키고자 퇴사를 했던 건데요.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평온했었습니다.


어떤 근거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분명 제 자신이 그 당시보다 더 즐겁고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신했습니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1년 뒤 제가 알고 깨달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나누는 일로 인도해 주었으며, 오늘 하루를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평택에서 지도한 친구들이 서울로 올라와 그동안의 장기 과정을 발표하는 공유회 날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너무 이 삶이 감사하여도 또 고마워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 잘하고 올게요~




기존의 익숙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제 안의 목소리를 따라 낯선 길로 들어섰던 "채우기 시리즈"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중간에 다소 휴재 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이야기를 기다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9월 중순쯤, 고잉홈 프로젝트의 마지막 이야기인 "비추기 시리즈"를 통해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지금 발행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유튜브에 영상 에세이 형태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들러주세요.



https://youtu.be/Q724tjMmD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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