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다이어트 2편] 다시 만난 세계
며칠 전 업무상 미팅이 있었다. 분명 5~6달 전쯤 만났던 모 회사의 대표가 명함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지난번 대표님 사무실에서 뵈었잖아요"
"아, 그랬나요?"
비즈니스 관계에서 구면인 사람을 못 알아보는 것만큼 미안한 게 없다. 대표는 나를 계속 멍하게 쳐다봤다. 기억을 끄집어 내려는 모습이었다.
내 명함을 건네자 그제야 "아, 그때 그분이셨구나" 한다. 6개월 전에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면 대부분 이런 반응이 나온다. 마치 초면인 듯 대한다.
결혼식장에서 이런 상황이 흔히 발생한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 반갑게 악수한다. 근데 누군지 모르겠다. '존대를 해야 할지, 반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동공이 흔들린다. "아~ 오~" 의미 없는 감탄사를 내뱉다 보면 그쪽에서 먼저 누군지 밝힌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결혼식장의 어색한 상황이 수시로 벌어진다. 20kg 가까운 지방이 몸에서 빠져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괜찮지만, 상대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참 불편하다.
비만인 시절 옷 살 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스웨덴에서 온 SPA 브랜드 '에이치앤땡'에서 105 사이즈만 잘 골라 입으면 된다. '에이치앤땡'은 마치 맞춤옷처럼 나에게 딱 맞는 핏을 제공해줬다.
'유니클땡'은 105를 입어도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딱 붙는다. 다른 브랜드들도 "이건 좀 크게 나온 거예요" 정도만 입을 수 있다. 가끔 110 사이즈 있으면 '득템'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2년 전 미국에 갔을 때였다. 비만 인구가 30%를 육박하는 '비만 대국'이다. 100kg 가까운 내가 왜소할 정도였다. '폴땡'이 싸다고 하기에 매장에서 XL 사이즈를 입어봤다. '쇼미더머니' 수준의 핏이었다. M 사이즈가 나에게 딱 맞았다.
맞는 옷이 많으니 너무나 고민스러웠다. 옷 하나 고르는데 이것저것 여러 번 입어봐야 했다.
지금, 2년 전 미국에서의 혼란이 다시 찾아왔다. 맞는 옷이 너무 많다.
선택의 폭이 넓으니 고민의 시간도 길어진다. 참 불편하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단짠' 음식을 줄였다. 최대한 양념하지 않은 요리를 찾게 됐다.
"요리라는 것은 식재료를 본격적으로 전달하는 행위지, 식재료를 가지고 무엇을 창조하는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한 그릇' 인터뷰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려 노력했다. 재료 하나하나를 음미하다 보니 새로운 맛이 느껴졌다.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졌다. 먹고 싶은 음식도 많아졌다. 참 불편하다.
3개월 PT를 받으며 매일 운동했다. 일주일에 2~3일은 피트니스 클럽에서, 그 외엔 집에서 운동했다. 몸이 너무 힘든 날도 최소 20분 실내 사이클 탔다.
PT가 끝났다. 운동을 안 해도 된다는 해방감이 찾아왔다. 2~3일 정도 운동 안 했다. 소파에 누워 TV 보는데, 몸이 너무 찌뿌둥했다.
비만인 시절 가장 좋아하던 자세였다. 소파와 나의 '물아일체(物我一體)' 그 자세가 정말 불편하게 느껴졌다. 방에 넣어두었던 실내 사이클을 다시 꺼냈다.
이제 운동을 안 하면 답답한 몸이 됐다. 참 불편하다.
회사 때문에 제주에 6년 정도 살았다. 제주가 아닌 곳(흔히 '육지'라고 한다)에서 "전 제주 살고 있습니다" 하면 항상 상대는 이런 질문을 한다.
"제주에 왜 갔어요?"
"제주 살 만해요?"
"제주에서 살면 좋겠다."
그럼 나는 이렇게 답한다.
"회사 때문에요."
"1~2년은 살만해요"
"살아보세요"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항상 똑같은 질문이 나오고 똑같은 답변을 한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이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떻게 다이어트했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요요는 안 와요?"
이 질문 수시로 받는다. 그럼 또 똑같은 대답 해야 한다. 참 불편하다.
이제는 대답 대신 이 링크를 건넬 생각이다.
https://brunch.co.kr/magazine/suvuvaldi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