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목욕_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두구동 목욕탕>
종종 가격을 두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커피 한 잔 원가가 얼만지 알아? 엄청 남겨 먹는대." 혹은 이렇게. "국수 한 그릇에 칠천 원이면 양심도 없지, 드는 게 뭐 있다고!" 모든 일에는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이 든다고 생각해 온 나로서는 도무지 동의하기 어려운 태도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는 걸, 여러 번의 언쟁으로 알게 된 뒤로는 슬그머니 대화를 피할 뿐이다.
그렇다면 목욕값은 어떻게 정해질까? 궁금하긴 했어도 진지하게 파고들진 않았다. 일단, 내가 값에 대한 큰 불평이 없다. 그리고 목욕탕을 경영하지도 않으니 수지 타산을 할 일도 없다. 시세를 어림짐작해 싸네, 비싸네 하는 정도다. 그런데 어느 목욕탕에서 목욕값의 비밀을 조금 알게 되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있는 <선두구동 목욕탕>이다.
<선두구동 목욕탕>은 파격적인 요금을 자랑한다. 대인 삼천 원, 소인 이천 원. 시세의 절반밖에 안 되는 값이다. 근방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초특가 목욕탕이 궁금했다. 값이 저렴하면 분명 사람이 많을 터, 그리하여 황금 같은 평일 휴가를 온전히 목욕탕 탐방에 쏟기로 했다.
예상외로 아주 번듯한 목욕탕이었다. 값이 저렴하면 보통 시설이 낡거나 모종의 이유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놀라웠다. 더 놀라운 건, 발 디딜 틈 없이 만석이었다! 목요일 점심때를 막 넘긴 애매한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연세 지긋한 할머님들이 가득했기에, 감히 젊고 다리 성한 내가 앉을자리를 찾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분위기였다. 눈치껏 샤워기에 서서 샤워를 끝마쳤다. 그리고 까치발을 하고 할머니들의 발과 다리 틈을 헤쳐 탕으로 겨우 들어갔다.
온탕, 열탕, 냉탕이 기역자 모양으로 벽을 따라 나란히 있었다. 상당히 압축적인 동선이랄까. 온탕에서 곧바로 열탕으로, 열탕에서 곧바로 냉탕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보기 드물게, 벽 쪽으로 안전 바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탕에 앉아 느릿느릿 씻는 할머니들을 보니, 안전장치가 좀 더 있어도 좋았겠다 싶었다. 배리어 프리 시설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꽤 타깃 맞춤형 시설이었다. 아, 덧붙여 물도 괜찮았다. 살짝 부드러운 듯한 질감이라 순했다.
느긋하게 있을 수 없었기에 목욕은 금방 끝났지만,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었다.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까. 그리고 목욕탕 탐방의 고정 순서, 카운터에 계신 분(주로 사장님일 가능성이 높음)께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사람 좋은 인상인 사장님께 웃으며 말을 건넸다.
"사장님, 목욕하러 멀리서 왔어요. 저렴하고 좋다 그래서요."
"아, 오데서 왔는데예?"
"저기 김해에서요. 제가 목욕 다니는 게 취미예요."
"하하, 젊은 사람이 별 희한한 취미가 다있노. 그래, 어떻든가예?"
"물도 부드럽고 좋고요, 생각보다 안에 잘 갖춰져 있어서 목욕 잘했어요. 근데 사람 진짜 많던데요."
"우리 물이 연수기 물이라 부드러워예. 그리고 값이 저렴하니까 많이들 오지요. 오늘이 쫌 많이 오기는 했다."
"근데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저렴해요?"
"아, 그거. 여기가 원래 목욕탕이 없는 동네였거든예. 근데 6년 전에 구청장이 요기 목욕탕을 지어준다꼬하고 당선이 됐어. 그래서 당선되고 나서 목욕탕 만들어준 거라. 원래 여기가 상수도 보호 구역이거덩요. 그카니까 목욕탕 허가가 안나지. 근데 우째했는가 모르겠는데, 구청장이 나서니까 되대. 나 많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목욕탕이 안 그래도 있어야 했지. 그래서 구에서 세운 거라 쪼매 저렴하다."
"아, 그럼 혹시 이 목욕탕은 입찰받아서 운영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구청에서 직접?"
"입찰이라. 우리는 5년 전에 이거 임대 입찰해서 들어왔지요. 그전에 하던 사람은 1년 만에 나갔는데, 빚을 1억 지고 나갔다 안 합니까."
"그렇게나 빚을 져요?"
"사람들 참 쉽게 생각하대요. 그냥 물은 나오니까 틀어주고 돈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카는데 천만에요. 물 데울라카면 가스 써야지, 정수기랑 연수기도 쓰고, 그거 전기는 좀 드나. 설비 갖추고 할라카면 투자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어요. 그리고 사람 써야지. 우리는 부부가 하는데, 진짜 힘들다. 매일 청소하고 물 맞추고. 우리 아저씨는 오만 자격증 다 땄어예. 소방, 보일러, 가스, 전기, 별거 별거 다해야 돼. 노하우 없으면 빚지기 십상이지."
"그러네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진짜 바쁘고 힘드시겠네요."
"내가 이 일 한지 10년 됐거든요. 우리 아저씨는 주로 물 맞추고 설비 보고 나는 손님 상대하는데, 카운터 앉아 있는 거 이것도 보통 일 아닙니더. 오는 손님 예사로 안 봐요. 단골 장사니까, 다 기억해야 돼."
그때 마침 재밌는 장면을 목격했다. 대화 도중에 어떤 할머니가 들어오더니 사장님께 이렇게 얘기하는 거였다.
"우리 영감한테 돈 받으소, 내 먼저 들어갑니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할머니는 들어가고, 사장님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기를 5분 정도 지났을까.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와서 사장님께 대뜸 돈을 내밀며 하는 말.
"우리 할매 들어갔지요? 내 못 산다. 쪼매만 기다리라카니까 마 그냥 가뿌대. 그라고 와 또 그냥 넣어줍니꺼. 내 안 오면 우짤라고 그카노."
할아버지의 미안함 섞인 말에 사장님은 씩 웃으며 쿨하게 한 마디 했다. "언능 드가이소. 날 춥다."
대화가 즐거웠던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사장님도 이런저런 얘기를 끝도 없이 풀어놓으셨다. 목욕탕 근처에 체육공원인 '스포원 파크'가 있어 운동을 마치고 오는 젊은 손님들도 제법 된다는 것, 목욕 한 번에 삼천 원이지만 열한 장 묶음으로 이용권을 구매하면 삼만 원이라는 것, 사장님 미모의 비결이 연수기 물 덕분이라는 것, 실력 좋은 세신사가 있어야 손님이 꾸준히 든다는 것, 12월 한 달 잠깐 오는 얼음골 사과 트럭이 그렇게 맛있다는 것, 사장님 자녀분들이 나와 비슷한 나이라는 것까지. 손님이 오면 오는 대로 대화를 잠깐 멈췄다가 이어가기를 반복했다. 밝고 명랑한 말씨의 사장님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단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바로 앞의 비빔국수 집으로 향했다. 뜨끈한 아랫목에 엉덩이를 붙이고 새콤달콤 차가운 비빔국수를 먹으니 비로소 개운한 기분이 든다. 문득 국수의 원가를 따지던 사람이 생각났다. 잘 몰라도,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값에는 보이지 않는 일들이 숨어있다. 온전한 국수 한 그릇에는 맛을 향해 치열하게 연구해 온 시간들이, 따끈한 탕에는 새벽에 일어나 타일을 닦고 물을 맞추는 노동이 녹아있다. 거기에 정확한 계산 같은 건 필요 없다. 다른 이들도 나처럼 정직하게 살고 있을 거라는, 서로를 향한 신뢰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맛있게 먹고 몸을 담그며 감사할 일이다.
오늘도 잘 먹고, 잘 담그고 갑니다.
선두구동 목욕탕 ㅣ 부산광역시 금정구 체육공원로 529-24
5:00 ~ 20:30, 수요일 휴무 ㅣ 대인 3,000원, 소인 2,000원 ㅣ 수건 대여 1장 200원, 드라이어 1회(3분) 100원
손영환 비빔국수칼국수 ㅣ 부산광역시 금정구 체육공원로 524
10:30 ~ 20:00(주문 마감 19:30) *평일 16:00~17:00은 브레이크 타임 ㅣ 비빔국수 및 해물칼국수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