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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포근 Mar 12. 2020

용재 이야기

한 번 더 손 내밀기

시험 전날 수업 한시간 정도는 아이들에게 자습시간을 허락해준다.


어느 자습시간, 아이들이랑 수학문제 빨리 풀기 내기를 하는데 (상품은 마이쮸다). 아이들은 내가 좋은 대학교를 나왔으니 다 알거라며 기술 역사 과학 별별 과목의 문제들을 다 물어보는데, 대답 못할 때면 굉장히 실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얘들아 미안해.. 근데 선생님 수학 영어 말고는 좀 힘들어… 사실 수학도 힘들단다.  


그날은 내가 참 막나간다 싶을 정도로 나를 속상하게 하던 아이들에게 꾹 참고 한 번 더 손을 내밀었던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떠들고 딴짓하는 용재를 내 옆에 직접 앉혀다가 공부할 걸 주고 연필을 직접 손에 쥐어주었다. 영영풀이라도 공부하라고, 열 개 중에 다섯 개 맞추면 마이쮸를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해맑게 오케이를 외치며 공부를 하는 척(?)을 하더라.


그러는 와중에 용재와 현태가 나에게 던지는 못된 말에는 그냥 반응하지 않았다. 날이 선 아이들의 말은 자기를 좀 봐달라는 신호이지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니까 말이다. 날선 그 말에 그저 아이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면서 “용재야 2학기에는 쌤이 더 잘해줄게. 더 노력할게. 용재도 좀만 더 노력해줘야 돼?” 라고 했다. 벌점에도, 깜지에도, 소리 지름에도 꿈쩍도 않던 용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삶의 만족도가 얼마나 되냐는 물음에 용재는 10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대답했다. 밤 늦게까지 친구들이랑 노는 게 일상이라는 데도 만족도가 생각보다 낮길래 왜냐고 물었다. 그냥 자기 인생이 망해가는 느낌이라고 용재는 대답했다. 사람 인생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더라고, 그럴때도 있는거 아니겠냐고, 곧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안심시켜두었다. 방학 땐 질리게 놀고 오라고, 다음 학기부터는 쌤이랑 열공하자고 말해뒀다. 뭐.. 이 말을 기억이나 할지,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나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날은 용재에게 마음에 자그마한 울림 하나 만들어줄 수 있었겠다 싶어 뿌듯한 하루였다.


성격 급한 나에게 부족했던 인내심이 아이들과 부대끼며 조금씩 길러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은 한 번 붙잡는다고 붙잡히지 않는다. 세번, 네번을 붙잡아도 조금 잡힐까 말까이다. 아이들은 자아와의 싸움에 여념이 없다. 일개 교사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부모를 제외하고 아이에게 그만큼의 영향을 줄 수 있는 파워를 지닌 사람도 없다.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다. 우리가 주어야하는 것은 결국 관심 또 관심, 미련할 만큼의 관심. 너희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나는 너희를 포기하지 않으며 끝까지 잔소리 또 잔소리 할거라는 것을 단단히 알려주는 것이다.


[2018년 여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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