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마음도 우중충한 날
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어쩐지 짜증스럽고 몇 발짝 되지도 않는 욕실로 가는 길이 황천길 마냥 서글픈 날. 오늘이었다. 시간은 아침 여덟시. 사실 그렇게 이른 시간도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 학교는 부서별로 돌아가며 일주일에 2-3일씩 학교를 지키고 있고,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엔 재택 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 부서가 당번이라 아침 9시부터 학교를 지키는 날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이 상황이 불쑥 짜증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누적된 스트레스가 우중충한 날씨와 겹쳐 '벌어진' 감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두자리수에서 세자리수, 네자리수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지 벌써 한 달.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고 집앞 카페나 식당 조차 마음 놓고 다녀오지 못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을 거의 모두 취소했다. 뉴스를 지켜봐온 결과 교사인 내가 코로나에 감염되면 '서울 ㅇㅇ구 모 중학교 교사 코로나 확진'이라고 널리널리 알려질 것이 뻔하다. 학생과 학부모, 특히 학생들을 보호해야하기 때문임을 알면서도 어쩐지 기분 좋아보이지는 않아 더 조심하게 된다.
새로운 우리반 아이들을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채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앵무새처럼 확인을 주고 받고 있다. '아이들 건강상태 확인 부탁드립니다.'하면 '괜찮습니다.' '건강합니다.'와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아이들은 정말 건강할까. 마음까지 건강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사놓았을 첫 교복이, 그리고 그 설렘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마음 한 켠에 접어두고 있을 아이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임인 신규 선생님들도,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작년 우리 제자들도, 올해 대학에 들어간 새내기 대학생들도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다. 마음껏 설레지도, 또 설렘으로 일구어냈던 다짐들을 실현해보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 사태가 진정이 되기를.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는 방학이 끝나는 게 사실은 무지하게 아쉬웠었다. 교사로서 새로운 아이들과 또 다시 일 년 간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품이 정말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새학기가 다가오면 마음에 묵직한 부담감이 차오른다. 더불어 예상치 못하게 힘든 아이들을 만나 일년 내내 고생하지는 않을까하는 다분히 인간적인 걱정도 컸다. 아직은 '누가 오든 난 걱정 없어!'라고 말할 정도의 베테랑 교사는 못되는 탓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개학이, 그러니까 아이들과 아옹다옹하며 이거 해야하네 저거 해야하네 잔소리 해야하는 피로함이, 종이 치면 정신없이 수업에 들어가며 아이들과 인사하는 분주함이 꽤나 그립다.
월요일이면 깊은 한숨을 쉬고, 화요일이면 아직 화요일이라고 절망하고, 수요일이면 오늘만 넘기면 한 주가 꺾인다고 희망을 갖고, 목요일이면 왠지 끝나가는 느낌에 홀가분해지고, 금요일이면 마지막이라 날아갈듯 기쁘던 일상의 나. 토요일이면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고 일요일이면 다가오는 한 주의 힘듦을 넘겨짚어보던 평범한 나. 그 한 주 한 주 속 베어있는 삶의 리듬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코로나 19 사태로 절절히 깨닫는 중이다.
우중충한 하늘, 구름이 축 늘어져 맥 없이 흘러간다. 매서운 비라도 쏟아내면 좋으련만. 비는 오는둥 마는둥 하더니 자취를 감춰버리고 구름만 존재감 없는 채로 햇빛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리듬감 없이 축 늘어져 흐른다. 몰입감은 불가측한 미래를 넘겨짚는 불안감에 희석되어 밍밍하기 짝이 없는 채로 우리의 삶을 부유한다. 코로나 사태 속 각자의 방식으로 맥 없이, 축 늘어져, 부유하고 있을 우리들. 조금만 더 힘을 모아 견뎌내고 마음 한 켠 접어두었던 설렘을 피워내자. 어쨌거나 날은 속절없이 따뜻해져가고 목련이 하나 둘 기지개를 켠다. 우리도 참았던 기지개를 조만간 시원하게 켤 수 있기를.
우중충한 어느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