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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포근 Mar 19. 2020

시네라리아 꽃을 길러요

하루가 다르게, 오래도록

화이트데이에 오빠에게 받은 노란색 '시네라리아'. 집으로 데려온지 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느덧 꽃이 꽤 많이 피었다. 길쭉하고 통통한 꽃잎은 생기가 더해졌고 잔뜩 오므렸던 아이들도 기지개를 켠다. 아이 예쁘다. 창가에서 데려와 요리조리 사진을 찍다 갑자기 미안해져 후다닥 창가로 다시 가져다두었다. 안그래도 자취방에 햇빛이 별로 들어오지도 않는데. 이런 맑은 날엔 1분이라도 더 쬐도록 해야해. 중얼거리며 말이다.


대학생이 되고 자취를 시작한 뒤로는 집에서 꽃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보통 방 한 칸과 화장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깔끔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꽃을 둘 테라스까지 챙길 여력은 없었다. 첫 방에는 해가 잘 들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건너편 건물의 창문이 보여 잘 열지도 못했다. 두번째 방에 살 땐 나름 햇빛이 잘 들었는데. 꽃을 곁에 두고 싶은 낭만이 없었다. 과외, 동아리, 시험 준비로 치열하고 바빴던 날들. 방을 깔끔하게 치우는 것 조차 버거웠던 날들이었다. 세번째 방에서는 새내기 교사로 생활에 적응하기 바빴다. 그리고 지금, 네번째 방. 사실 꽃을 들일 낭만은 여기서도 없었지만(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가?) 꽃을 키우자고 가져오는 낭만적인 사람을 만났고, 그렇게 예쁜 꽃을 내 방에 들이게 되었다.


시네라리아의 꽃말은 '항상 즐거움'과 '충만한 기쁨'이다. 이 꽃 하나 들어온다고 내 인생에 즐거움과 기쁨만 있으랴만은, 어쨌든 내가 힘들고 지친 날에도 내 방에 하나는 즐거움과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보기만 해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따뜻해진다. 꽃을 선물해주던 오빠의 표정이 생각 나서, 하루가 다르게 꽃이 열리는 모습이 신기해서, 얼마 들어오지도 않는 햇빛에도 노랗고 탱글탱글하게 고개를 든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말이다. 예쁜 테라스 하나 없어 창가에 기대어있지만 그래도 너는 참 예쁘다. 너만은 내 방에서 변함없이 즐겁고 충만하게 기쁘기를.


테라스도 없이 창가에 기대어 피어나는 꽃

시네라리아는 12월부터 4월까지 오래오래 피는 꽃이라고 한다. 4월에 지고 나면 풀만 살아있다가 이듬해 다시 꽃이 핀다고 한다. 5월부터 11월, 7개월간은 눈에 보이는 예쁜 꽃이 없어도 3일에 한 번 잊지 않고 물을 줘야한다. 잘 할 수 있을까? 꽃이 한 번 피고나서 고개를 떨구면 그 꽃은 잘라내주어야한다고 한다. 유치원 꼬꼬마 시절, 내 이름이 팻말로 꽂혀있는 텃밭에서 토마토를 기르던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내친김에 유치하게 이름도 지었다.

옥엽이. 금지옥엽할 때 옥엽이. ㅎㅎㅎㅎ


오늘은 옥엽이에게 물을 주는 날이다. 예쁘게 피고, 또 지고, 또 피고, 내가 조금은 시큰둥 해질 때쯤 긴 시간 자취를 감출 너. 3-4일에 한 번은 물주기. 마음은 매일매일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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