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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우 Aug 26. 2016

금수저 일기 6

보수 vs 진보

두 번째 월급을 받았으니, 어느새 이직을 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었다. 일을 시작하며 의욕적으로 이런 저런 일들을 벌였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낸 건 아직 없다.


보수 vs 진보

정치적인 의미가 아닌 사전적 의미를 내 상황에 대입해 본 것이다. 보수라 함은 기존 시스템을 이해하고 유지시킨다는 의미라면 진보는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과 변화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새롭게 일을 시작하며 내가 방점을 둔 부분은 '진보'였다. 아버지가 해 오던 건 낡은(?) 시스템이고 IT회사에 근무하며 선진(?) 회사 문화를 익혔던 나는 세련된 시스템을 도입하고 적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 5일 근무, 자율 출퇴근제, 언제든 섭취할 수 있는 풍부한 간식, 연차, 육아휴직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제3자가 되어 상황을 관조하면 쉬워보인다. 허나, 막상 플레이어가 되어 그라운드에서 네 뜻대로 해보라 하면 어버버 하며 헤매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금 내 상황이 딱 그짝이다.

아버지가 해오던 시스템은 낡아 보였지만, 아버지는 본인이 구축한 시스템으로 30년 가까이 본인의 조직을 이끌어 오셨다. 이 업종에 대해 'ㄱ'도 모르는 애송이가 이 공고한 시스템에 변화를 준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결국 일의 생리를 익히며 현재 시스템에 녹아든 후에야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이해

주5일제 근무가 당연한다고 생각했고, 믿었고,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현재 회사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상시 근로자가 5인 미만일 경우, 보편적인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연차휴가도 없고, 주5일 근무도 의무사항이 아니다. 이에 따라 현재 회사는 주6일 출근이다.


- 업종에 대한 이해

얼마 전까지 몸담았던 회사가 속한 업종인 지식정보서비스업과 제조업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노동력의 인풋 대비 아웃풋의 양과 질을 수치적으로 측정하기 어렵지만 제조업은 노동력 투입 시간과 그 산출 결과가 명확하다. 노동력이 많이 투입될 수록 생산량도 비례하여 증가한다. 즉, 누군가 일을 하지 않고 쉬게 된다면 생산량에 공백이 생긴다. 그 어떤 사업주도 이 상황을 바라진 않는다.


- 첫 번째 한 '일 다운 일'

함께 일하는 아저씨들은 토요일에 쉬고 싶어했고, 토요일에도 공장문을 닫아 본 적이 없는 나의 보스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 찢어지는 법"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계셨다. 결국, 전 구성원이 월 1회에 한해 돌아가며 토요일에 쉬는 절충안을 제안했고 아버지는 이를 수용했다.


-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해야하는 건 무엇인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시스템을 구축해야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와도 적응을 수월하게 할 수 있고 그래야만 회사가 무탈하게 굴러갈 수 있다. 시스템에는 근무시간과 일수 조정, 제품생산에 필요한 금형 위치 분류, 재고 파악 및 분류, 간식 조달, 비품 조달 등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프레스 금형기능 장인이 되면야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러지 못할 바에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구성원을 찾아 고용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 마음 속에서 부딪친 보수 vs 진보 대결 구도로 봤을 때, 보수적인 기존 시스템을 기반으로 진보적인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적용시키자. 이게 내 결론이다. 진부하면서도 싱겁다.


+사족

사실 내 롤모델은 월 2천 정도 수금할 수 있는 건물주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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