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라고 쓰고 통보라고 읽는다.
어느덧 10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곧 다가올 11월이란 직장인에겐 바야흐로 실적 평가의 계절. 고로 이번 달에는 우선 동료 평가가 진행되었다. 이는 내가 지정한 업무 관련자 (동료)들이 나에 대해 객관식/주관식 평가를 하는 것으로, 익명으로 하는 우정 테스트와 같다. 평가가 끝나면 결과를 조회할 수 있지만, 신입 때 이를 보고 의가 상한 기억이 있어서 다신 보지 않는다 (물론 팀장 면담 때 친히 읊어주셔서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두들겨 맞았다). 내가 평가자를 지정했고, 주관식 답변의 문체나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누가 이걸 썼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기 때문에 익명인 것이 별 소용이 없다. 그리고 대체로 그렇듯이 앞에서 듣는 쓴소리보다 뒤에서 듣는 쓴소리가 더 슬픈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평가 요청이 온다. 나는 이런 극악의 상황에서도 익명성을 보장받고 싶어서 주관식 평가는 단어만 쓰는데, 올해를 빛낸 빌런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사회생활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이른 연봉 협상을 진행하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그 해의 평가에 따라 내년도 연봉 인상률이 정해져 있는데 (그래서 협상이라고 쓰고 통보라고 읽는다.) 올해는 조금 특이하게 10월에 연봉 협상을 하게 됐다. 그래서 평소에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었던 임원과 일대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사무실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불려 나갔을 때의 그 어리벙벙함 이란. 나의 존재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임원 앞에서 입은 바싹 말랐지만, 긴장한 것에 비해 면담은 별 내용 없었다. 요즘 어떤지에 대한 간단한 근황 질문으로 시작해서 세상에 이런 회사는 없다느니, 새 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여기 다니는 게 나을 거라느니 하는 가벼운 압박이 들어왔다. "어유~나는 직장 다시 구하라고 하면 못 하겠어~"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도 다른 회사에서 왔음을 기억하며, 오래오래 같이 다니자는 말에 그저 "네~" 했다. 결국 연봉은 늘 그렇듯, 바뀐 숫자 찾기 놀이를 해도 될 정도로만 오를 예정이다. 이렇게 한 해가 슬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커버 사진은 연봉 통보 후 드러누운 내 모습. 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그려주신 허리 통증 완화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