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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Aug 31. 2024

임계점을 당기는 인풋의 혁명

인풋과 아웃풋의 관계는 늘 일방적이다.

보통 무엇이든 어마어마한 인풋 후에  

보통 수준 이상의 아웃풋을 기대할 수 있다.


공부, 운동, 독서 등 일정 수준 이상의 아웃풋에

도달하기 전,  

일정 수준 이상의 절대량의  

인풋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바로

축적과 지속과 강화의 시간이다.

결국은 임계점에 도달하여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아웃풋이 실현되기 위한

필수의 과정이다.


임계점은 끓는점과 비교할 수 있다.


99도가 이를 때까지 끓지 않던 물이

1도 높은 100도에 도달해서

맹렬히 끓듯이

그 1도씨의 온도를 높이는

마지막 보일링(boiling)이

가장 난도 높은 고통(?)을 수반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남은 그 마지막 1도씨의  

침묵과 단조로움, 지난함에서  

권태로움과 포기의 유혹에 닿기가 쉽다.

그 1도씨만 높이면

마침내 원하던 아웃풋이  

발화하고 터지는 모습을 맞이함에도.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많은 이들이 겪는

잘하다 문득 그만두고 싶은 시점이

대체로 임계점을 바로 앞에 둔

그 1도씨만 높이면 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있다.


마치 단군신화에서 곰이

마늘과 쑥을 일정기간 계속 견디며 먹은 후

사람이 되어 단군왕검의 어머니가 되었듯이


마늘과 쑥을 먹는 고난에 비견될 정도의

인풋의 과정을 거쳐

임계점을 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다르다


또 다른 무언가를 익히고 인풋을 쌓아갈 때

그 1도씨의 고통을

제법 수월하게 소화한다.

임계점을 넘어 아웃풋이 실현될

그 꿈의 순간이

코 앞임을 감을 잡는 것이다.


임계점을 넘었다는 그 기쁨

요즘 흔히 말하는 도파민 충족보다 더하다.


눈 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그 임계점이 다가옴을 아는 그 감은

어떻게 길러지나.


항상 그 인풋의 과정의 힘듦을

늘 그 아득한 임계점을 바라보며

그저 묵묵히 견뎌야 할까.  


아니다.


임계점을 당기는 인풋의 혁명을 만들면 어떨까.

방법은 두 가지다.


계속되고 반복되는 과정 속에

변주를 주는 것.

클래식 음악에서의 즉흥연주 카덴차처럼.


혹은 쉽게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는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수립하는 것.


첫 번째는 '안 하던 짓'을 해보는 거다.

지금 하고 있는 인풋의 과정과

상관없을수록 좋다.

짧은 여행을 하거나

생각도 공부도 독서도 운동도

하루 이틀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러한 괜찮은 일탈을 규칙적이고

주기적으로 하면 좋다.

건강한 정신력이라면 이는 결코

인풋을 방해하거나

경로이탈을 초래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단기 목표 달성이다

임계점까지의 시간적 거리가 짧은

혹은 상대적으로 인풋 과정이

쉽고 즐거운 목표를 수립해서

이루어보는 거다.

일주일 동안은 직접 아침을 간단히 차려먹기

출퇴근 시간 동안 1주일은 매일 책 읽기.


두 가지 방법으로  

임계점을 쉽고 빈번하게 정복해 보자


그리하여 종국에는

원하던 큰 아웃풋을 얻는 경험을

힘들지만 보람이쏜 경험을

우리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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