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조직은
겉으로는 무감각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러 감정이 출렁거리고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회사 역시 사람처럼
기쁨, 슬픔, 분노, 질투 같은 감정을
끊임없이 느낀다.
예상보다 높은 성과를 거뒀을 때의 기쁨,
공을 들였던 사업이 어그러졌을 때의 슬픔,
외부인의 잘못된 평가에 대한 분노,
사세를 확장한 경쟁 업체에 대한 질투.
조직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조직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상대방의 모든 감정에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부모자식이나 부부, 연인 같은
끈끈한 관계에서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서류상 계약 관계인
회사와 사원간의 관계라면 어떨까.
신규 사업의 안착으로 회사는 기쁘지만,
그 때문에 한 달째 야근하는 난 일단 좀 자고 싶다.
우리 회사가 문제가 많다는 신문기사에
부서장은 불같이 화를 내지만,
사실 그 기사는 깔끔하게 정곡을 찔렀다.
잘 나가는 경쟁 회사에 대한 질투보다는,
오히려 기회가 되면 나도 그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때때로 우리는 조직의 감정에 공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우리는 회사 앞에 솔직한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
내 감정보다는 회사의 감정을 잘 파악하고,
한 발 먼저 조치하는 사람이
일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내리는데 주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가끔이라도,
나의 감정을 확인하고
가꾸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만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사람들, 찬란한 자연들,
때로는 머리 아픈 고민들마저도
나도 잊고 있던 내 속의 감정들을
신선하게 자극했다.
보다 싱싱해진 나의 감정들을 가만히 구경해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뚜렷해졌다.
많은 여행지가 훌륭했지만,
발칸 반도의 불가리아 역시
나의 감정을 풍부하게 이끌어낸 곳이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마음만 먹으면 관광명소들을 둘러보는데
하루 이틀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든 짧게 지나치면
전해지는 감정들은 제한된다.
우리가 한 달을 머물렀던 소피아는
다양한 감정들이 입체적으로 공존하는 곳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정교회 성당들은
소피아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지만,
성당 주위에서 거침없이 손을 내미는
집시와 걸인들이 더해질 때에는
가장 현실적인 장소가 된다.
세련된 카페와 화려한 기념품점이
즐비한 중심가의 활기는 역동적이지만,
삼삼오오 무리 지어 배회하는
유기견들의 활기는 두렵고 긴장된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황량하고 단조로운 풍경 속에서
공산주의의 냄새가 희미하게 나지만,
풍성하게 심어져 있는 밤나무 가로수들에서는
따뜻하고 익숙한 정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슬람의 오랜 지배 시절,
No라는 속마음을 위장하기 위해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던
소시민들의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No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Yes의 의미를 고개를 젓는
버스기사님을 마주하게 되면 정작 당황스럽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답게
여전히 발굴되는 고대 유적들과,
이를 배경으로 열리는
지극히 현대적인 음악 공연들이 의외로 조화롭다.
우리 안의 감정들이 다채로우면서도
때로는 양면적인 것처럼,
소피아 역시 그런 도시다.
불가리아가 우리에게 나름 알려지게 된 건
그곳의 특산물인 요거트와 장미의 공이 크다.
하지만 불가리아의 온천수가
훌륭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요거트나 장미 화장품처럼
쇼핑백에 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소피아의 지명 역시 옛날 옛적
이곳의 좋은 물과 공기 속에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동로마제국의 공주 이름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지만
100년 전까지는 목욕탕이었던 건물 근처에서는
온천수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
살짝 놀랄 만큼 따뜻하면서
미네랄이 많아서 조금은 비릿하다.
그 물을 담아가기 위해
큼지막한 빈 통 여럿을 가져온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인 것처럼 능숙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차 한 모금이 몸 안에 퍼져 가는 것처럼,
이곳에서 시작된 온천수가
소피아의 모든 사람들에게
천천히 퍼져 나가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후끈해진다.
그 따스함이 우리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해 간 작은 페트병에 온천수를 담았다.
월드컵 예선이 한창이던 10월,
불가리아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1994년에는 4강 진출도 했던 불가리아지만,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20년 동안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는
무려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와
한 조가 된 불운 속에서도 나름 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관람했던
프랑스와의 홈경기에서 패배한다면,
또 다시 4년 후를 기약해야 했다.
경기장을 찾은 우리가 아무래도 낯설었는지,
게이트 직원은 우리의 몸을 수색하면서
어느 팀을 응원하는지 물었고,
우리가 당당히 불가리아라고 대답하자 활짝 웃었다.
관중들은 억수 같은 빗줄기 속에서도
색색의 우비를 입고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실력 차이는 현실이었고,
1대 0으로 패배하면서
결국 또 다시 월드컵 무대에는 설 수 없게 됐다.
경기가 끝나고
애써 담담하게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월드컵에 나가기 쉬운 한국이기 때문에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부디 다음 월드컵에서는
불가리아의 국기를 볼 수 있기를.
우리가 소피아에서
한 달간 머무른 에어비앤비 숙소는
우리 또래의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살고 있는
일종의 셰어하우스였다.
우리가 빌린 방은 거실이어서
커튼을 치고 살아야하는 구조가 아닐까 걱정했는데,
방 3개, 거실 1개, 부엌 1개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모두 별도의 문을 가진,
완벽히 분리되어 있는 구조였다.
이곳에 사는 토드, 아니, 이반은
각자의 일정에 따라 개별적으로 움직인다.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면서
가볍게 안부를 묻지만,
일부러 다른 사람의 귀가를 반기거나
배웅하지는 않는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다른 사람의 방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다.
하지만 유일한 공용공간인 부엌에서
가끔씩 식사를 같이 하며 즐겁게 대화한다.
영상제작자인 토드는 방에서 일을 하고,
방금 집에 돌아온 아니는 방에서 음악을 듣고,
부엌에서 게임하던 이반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우리는 부엌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는 일상.
이 집에서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함께 할 때는 가족같이 친근했다.
5명이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쌀이 주식인 우리를 위해
치킨라이스를 만들어 줬던 불가리아 친구들.
그 사려 깊음에 감동했었어요.
유럽 여행을 하면서
꽤 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갔지만
소피아 근교에 위치한
릴라 수도원은 단연 최고였다.
작은 아치문을 통과해 릴라 수도원을 마주하면,
누구나 저절로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건축물의 영속성은 성스러움을 더해 주었고,
수도원을 품고 있는 릴라산 역시
이곳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수도원을 몇 바퀴씩이나 돌면서
그곳을 마음속에 새기기 위해 노력한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눈을 감으면
릴라 수도원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이 생생하다.
나는 머리로 하는 여행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다.
가령 여행지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자료를 찾고, 계획하며 지식을 쌓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좀 더 감정적인 여행을 하려고도 노력한다.
머릿속의 지식보다는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들이
나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는
퍼즐 조각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