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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Aug 21. 2023

앓는 여름 보내고 새 사람 들이기

트레바리 파트너 첫 모임을 앞두고 쓰는 글

앓는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4일 차, 인후통이 날 깨운다. 바짝 마른 코와 후두벽에 공기가 버석거리며 부딪힌다. 침대에서 나와 약을 한 주먹 털어 넣고 약 기운이 돌기를 기다린다.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언제까지 아프려나. 이 상태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여름은 라섹 수술과 함께 시작했다. 감아도, 떠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 각막 상피 재생의 고통에는 에누리가 없었다. 음주와 운동 금지령으로 나머지 6월을 맹숭하게 보내고 돌아서니 기관지염과 함께 7월이 찾아왔다. 아주 지독한 놈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가래 섞인 기침이 튀어나오고, 열은 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2주간 병원을 들락거리며 알레르기약과 항생제, 스테로이드까지 추가하고 나서야 기침은 잦아들었다. 폭염의 기세가 한풀 꺾일 즈음엔 두 번째 코로나에 걸렸다. 다시 집에 처박혀 약을 먹고, 잠을 자고, 다시 약을 먹고 잠자기를 반복하고 있다.


굳이 긴 시간을 할애해 여름의 투병 일지를 읊는 이유는 맘처럼 풀리지 않는 에세이 때문이다. 트레바리 클럽 오픈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나는 첫 에세이 주제를 무려 “생기발랄 파워 넘치는 열정열정 파트너의 마음가짐”으로 정해놓고 드릉거렸다. 하지만 마침내 글을 써야 할 때가 되자 내 몸뚱이는 코로나에 점령당해 버렸고…(코로나의 숙주가 되어버린 파트너를 아시오.) 약에 취한 상태에서 나오는 문장은 앓는 여름 따위뿐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세상 낮은 텐션으로 첫 모임에 임하는 파트너의 마음가짐에 관해 쓴다.




트레바리 파트너 지원서는 지원동기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답변을 적는 데는 긴 시간이 들지 않았다: 이 모임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너무 좋아해서, 이 정도의 애정이라면 ‘내 클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를 쓰는 클럽이 있는 주는 모임 날을 기준으로 일주일이 돌아갔다. 수요일 자정까지 끙끙거리다 흰 수건을 던지는 심정으로 마감을 치고 나면, 이번 달도 해냈다는 너절한 기특함을 안고 멤버들이 올린 글을 읽어나갔다. 침대에 누워 한 편 씩 글을 읽다 난데없이 뻐렁치면 새벽 서너 시까지 잠들지 못하기도 했다.


마감 후 모임 전까지는 못다 읽은 책을 부지런히 읽고, 댓글을 단다. 멤버들을 만날 때 쯤이면 이미 글을 여러 번 읽은 뒤라 얼굴에 글이 겹쳐 보인다. 북토크, 씀토크를 통과하고, 이어 뒤풀이 자리를 연장으로 달린다. 이번 글에서는 어떤 부분이 좋았고, 이런 비유는 어떻게 생각해 내는 건지 부러워서 화가 났고, 에세이 주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던 것이라 반가웠고… 술 한 잔에 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해가 뜬다. 강남역을 가로질러 첫 차에 올라타면서 생각한다. 아, 이번 달도 너무 재밌었다.


너무 좋아하면 가끔 두려워진다. 모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이 실체 없는 짝사랑처럼 느껴졌다. 내 클럽을 해야겠다. 생각은 이렇게 흘렀다. 그럼 적어도 사랑이 어디로 향하는 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커지는 애정을 멤버의 지위에 맞춰 단도리하는 데 힘쓰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내어놓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트레바리 파트너 지원서를 써 냈다.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다 씀에세이 클럽에 정착한 이유는 단순했다. 재미있어서. 한 달에 한 번 마감에 맞춰 글을 써내는 재미, 합평을 통해 글의 폭과 깊이를 넓혀나가는 재미, 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타인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 그중에서 내가 최고로 치는 것은 에세이를 마중물 삼아 이어지는 찐한 대화의 재미였다.


클럽 운이 없었던 탓인지, 책만 읽고 모이는 클럽에서는 개별적인 사람을 알아가는데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더 녹진한 대화를 끌어낼 계기가 없다고 할까. 정규 모임에서 나누는 인사이트가 좋았어도, 뒤풀이 자리에서의 이야기는 피상적으로 돌다 끝나는 일이 잦았다. 타인의 껍데기만 핥다 집에 돌아가는 날엔 지하철 한 칸이 현타로 가득 찼다.


그런 면에서, 씀에세이는 달랐다. 모임에 참석하려면 써야 하는 에세이는 솔직하지 않으면 쓸 수 없었고, 스스로의 관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피지 않으면 또 쓸 수 없었다. 글로 만나는 개인의 이야기는 피상적인 대화를 깨부수는 힘이 컸다. 정규 모임과 뒤풀이 자리까지 서로의 글 이야기를 1절에서 4절까지 돌림노래로 완창하며 4개월을 보내고 나면, 다른 데 비할 바 없이 밀도 높은 개인이 남았다.


클럽 소개 글에 타인의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의 글이 더 풍부하게 읽히는 선순환에 대해 적었다. 이 선순환이 톱니바퀴처럼 딸깍딸깍 맞물려 돌아갈 때의 즐거움을 함께하고 싶다고, 함께 쓰면 더 재미있다고. 씀에세이-사람은 밀도 높은 대화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는 클럽이었으면 좋겠다.




클럽이 오픈되고 매일이 오두방정이다. 눈을 뜨면 트레바리 앱에서 우리 클럽이 어디에 노출되어 있나 찾아보고, 오백 번은 읽었을 소개 글도 오백 한 번째 읽어보고, 찜 개수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새로 등록한 멤버가 있는지 확인해 본다. 첫 모임이 다가오면서 걱정도 늘어났다. 베테랑 파트너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걱정을 내비치면 처음이라 그렇다고, 막상 시작하면 잘할 것이라는 고맙지만 어딘가 와 닿지 않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미 파트너를 수년간 해온 그들에게 클럽 오픈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 나 너무 오바하는 것 같지 않냐. 친구에게 말하자, 그간의 오두방정을 지켜봐 온 그가 한마디 했다. “다른 파트너들은 첫 모임과 너무 멀어져서 그래. 너는 마음이 아직 새것이잖아.” 닳지 않은 빳빳한 새 마음은 귀하다. 찐 초심도 이때 뿐임을 깨달은 나는 마음껏 오바하며 첫 모임 준비를 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임이 시작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절기를 따라, 앓는 여름을 보내고 새 사람을 들일 준비를 해본다. 밤낮으로 바람이 선선해지다 어느새 차가워지고, 긴 팔 셔츠에서 가디건으로, 가디건에서 코트로 옷차림이 변하는 동안 쌓일 관계의 밀도가 궁금하다. 새것인 애정은 넉넉하게 준비해 두었다.



트레바리 클럽 [씀에세이-사람]을 오픈하며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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