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한 학술대회에서 부스 전시자로 참여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전에 전시했던 행사와 참가자들의 결이 달라 현장의 반응이 특히 궁금했다. KTX 타고 멀리까지 왔는데, (돈도 많이 썼는데)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의 호응이 좋았다. 부스 앞은 아침 일찍 행사 시작 전부터 붐비기 시작했고, 세션 중간중간 쉬는 시간마다 기웃대는 사람들은 더 늘어났다. 나는 미래의 고객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사람들에게 우리 서비스를 소개하고, 시연하고, 또 소개했다. 설명은 하면 할수록 탄력이 붙었다. 호기심에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은 나의 설명을 듣고 선뜻 프로모션에 참여했다. 내가 시연을 시작할 때는 두어 명뿐이었는데, 시연을 마칠 때쯤 열명 가까이 불어나기도 했다.
반응이 좋으니 신이 났다. 나는 탄력을 받다 못해 거의 스티브 잡스에 빙의해 떠들어댔다. 하루 종일 서서 떠들었는데 너무 즐거워서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충만함이 넘쳤다. 마약을 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싶다.
내 인생 전체가 가리키고 있던 한 가지
내 업무의 대부분은 말과 글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는 출근해 메일을 쓰고, 협력사나 의료진과 통화하고, 말과 글의 다양한 변주 형태를 통해 우리 서비스를 판다. 말과 글을 활용해 서비스를 파는 행위에는 위에 썼던 부스 전시에서 떠드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면 할 수록 깨닫는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말과 글을 사용하는 일을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사람이다.
내가 병원을 다니던 시절, 가장 좋아했던 업무는(그렇게 병원 욕을 하지만 놀랍게도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 환자 교육이었다. 다른 일을 할 때에는 덤벙대도, 이상하게 환자 교육을 할 때만큼은 또릿또릿 잘도 이야기했다. 환자에게 시술이나 검사 전 후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농담을 건네며 환자의 불안을 경감시켜주는 것은 나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그땐 잘 몰랐지만, 나는 그렇게 싫어하는 간호를 하면서도 '말'로 하는 일은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살아온 인생 자체가 복선이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제일 오래 했던 알바는 중고등학생 과외와 학원 보조강사였다. 학교에서 팀 과제가 있으면 발표자 역할을 곧잘 맡았다. 글 읽는 것을 좋아했고, 텀이 길 수는 있어도 일기는 꾸준히 썼다. 문득 살아온 날 전체를 되짚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은 모두 말과 글로 수렴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옥 같았던 병원 시절에도 환자 교육을 좋아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 일관성에 소름이 한 번, 이렇게 명백한 것을 아주 최근까지도 몰랐던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소름이 돋는다.
재밌는 일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일의 본질적인 요소가 말과 글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회사 생활에 대해 약간 관점의 변화가 생겼다. 지금껏 나는, 내가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이 회사'에서 하는 '이 일'이 특별히 나와 잘 맞기 때문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꼭 이 회사, 이 일이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거창할 것도 없이, 말과 글이 본질인 일이면 된다. 지금껏 살아오는 내내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라면 보나 마나 나는 또 재밌게, 즐겁게 해낼 것이 분명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는 정말 간호사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까. 만약 내가 환자 교육 전담 간호사였다면 어땠을까. 혹은, 환자나 보호자를 위해 글을 쓰거나 강연을 했다면? 병원에서 일해도, 간호사여도, 내 업무에 말과 글의 요소만 넉넉했다면 나는 즐겁게 병원을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병원에 소속된 일개 간호사가 이런 업무를 맡을 수는 없었을 테니,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지만)
그래서, '뭘 해야 내가 조금이라도 즐겁게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요즘 나의 결론은 이렇다.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든, '말과 글'이 본질인 일을 하자.말과 글을 쫓는다면 나는 어디에서든 재미있는 일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가치를 우선한다면 어딜 가서 어떤 일을 해도 내가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 것이 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