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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호레 Apr 10. 2023

삶을 지키는 일

여전히

 

 지난 주말, 영화 ‘스틸 앨리스‘를 봤다. 촉망받는 컬럼비아 교수이자, 좋은 아내, 3남매의 엄마 앨리스. 직장에서도 능력으로 인정받고 가정에서도 존중받으며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의 고민은 단 하나, 막내딸 리디아였다. 법대를 다니는 첫째 딸과 의대를 다니는 아들은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것 같은데 리디아는 튼튼한 철로를 탈선한 열차 같았다. 딸을 보러 LA를 간 앨리스는 만약을 대비해 대학을 가라며 다그친다.  

 

 그러던 어느 날 언어학을 가르치는 그녀가 일상적인 단어가 생각나질 않고, 약속들도 자꾸 까먹기 시작한다. 강의에서도 단어가 생각이 안 나 긴 정적을 만들고야 만다. 본인의 상태를 직감적으로 느낀 앨리스는 신경외과를 찾았고 유전적 조기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는다.

 병으로 삶을 잃어가는 그녀를 마지막까지 지켜준 건 법대 나온 딸도, 의대 나온 아들도 아닌 결국 리디아였다. 나의 아픈 손가락이 나의 손가락 전부가 됐다. 가진 게 많은 이들은 지킬 것도 많았다. 안타깝게도 그중 앨리스가 포함되지 않았을 뿐. 그녀는 여전히 앨리스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달력을 보게 된다. 아빠의 중요한 검진일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아빠는 당신의 건강 상태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 미뤄왔던 걸까. 아직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걱정을 미리 하는 모난 성격 탓에 무서운 생각만 든다. 나는 리디아가 될 수 있을까. 아빠의 손가락 전부가 되는 일을.



 문득 지난번 읽었던 조던 피터슨 책이 생각났다. 그의 딸 미카일라의 희귀 루게릭병으로 전쟁과 같은 나날을 보낸 그와 그의 가족. 한 문장에 그동안의 고민과 고통, 사랑이 잔뜩 느껴져서 마음 깊이 남았던 문장이라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의 한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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