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열차가 떠났어도 다음 열차는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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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눈앞에서 문이 닫힌다.
열차를 놓쳤다.
급한 출근길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좋지가 않다.
하지만, 괜찮다.
바로 다음 열차가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도림행이다.
이번에는 열차를 잘못 탔다.
귀를 따갑게 울리는 안내음, "이 열차의 종착역은 신도림역이오니..."
알면서도 그냥 앉아있었다. 다음 역에서도 미리 내리지 않았다.
결국, 신도림역에서 내려야 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사회생활을 운운하기에는 너무 짧지만,
어쨌든 이번 회사생활은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사회생활 중 가장 짧은 시간이었다.
이제 고작 세 달. 인수인계 기간을 고려해 남을 시간을 합쳐봐야 퇴사까지 네 달이다.
그런데 그만두기까지는 가장 긴 시간을 고민했다.
결정장애를 혐오하고, 조언을 구하기는커녕 끙끙 앓더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결정이 빠른 편이던 내가,
이곳저곳 나이불문 성별불문 직종 불문 전화를 해대며 조언을 구했고
결정장애가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국 오늘, 퇴사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
어딜 가든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힘들면서도 힘들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릴 만큼 재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의 내 직업관이다.
고민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싫어하는 일도 나만의 일로 만들어서 해내는 법을 소개한 책을 추천해주었지만,
죄송하게도 하나도 와 닿지가 않았다.
재미없는 일은 그저 재미없는 일이고, 견딜 수 없는 일은 역시나 견딜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사회로 나온 후의 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
일을 할 때 '돈, 시간, 재미...' 이 셋 중 적어도 하나는 충족이 되어야만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중 재미를 택했고 돈과 시간은 좀 포기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버텨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세계에서는 포기한 사람으로 남겠지. 사실이다.
하지만 포기하는 것도 때론 용기다.
항상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처음 한 달은 지옥 같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면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싫은 일이 생기는만큼 재밌는 일도 생겼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한 채 일에 눌려 의욕을 잃어갔다.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싶은 적은 많았지만(실제로 던진 적도 있었을 것이다),
휴대폰을 변기에 넣고 돌려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괴로웠다. 늘 불안했다. 아침에 눈을 뜬 채로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하루는 출근하다가 회사를 바로 눈 앞에 두고서는 지하철역 안 커피숍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제를 잊기 위해 몸부림쳤고 오늘은 한 것도 없이 지나가버렸고 내일은 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럼에도 퇴사까지 많은 고민을 했던 건 회사생활보다 더 지옥이라는 구직생활을 경험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불안감과 끝없이 추락하는 자존감... 두려웠다.
그리고 퇴사를 고민한다고 했을 때, 대다수의 조언은
"대책은 있고?" "어딜 가나 힘든 건 마찬가지..."
맞는 말이다. 그래서 고민에 또 고민을 했다.
뚜렷한 대책은 없었다.
하지만 직종을 바꾸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늦은 김에 그냥 버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왕 늦은 김에 천천히 새 길을 찾아가자는 생각.
어쨌든 희망은,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그들이 나를 쓰느냐 마느냐가 문제이지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뭐라도 되겠지.
신도림역에서 기다렸더니 결국 다음 열차가 도착했다.
이번엔 목적지에 제대로 도달하는 열차를 탔다.
그리고 나는 무사히 퇴근을 마치고 귀가했다.
앞으로도 눈 앞에서 문이 닫히고,
길을 잘못 들어 방황하는 일이 분명 또 생길 것이다.
그래도 두렵지 않다.
오늘 퇴근길처럼 결국 언젠가는,
무사히 옳은 길로 갈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