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는 특이하게 정말 딱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 애를 굶겨서 배 골게 하면 안먹는것도 먹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극한의 상황이 아니라면 연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고 나머지에는 입을 대지 않는다. 연두가 먹는건 로얄캐닌 사료, 챠오츄르(참치맛), 템테이션(모든맛) 그리고 동원의 뉴트리플랜(대부분의 맛) 그리고 아주 가끔 사람이 먹는 생크림이나 치즈 같은것을 뺏어먹는다. 이정도가 끝이다. 요즘은 몸에 좋은 짜먹는 츄르 형태의 간식도 많은데, 여러 종류를 시도해봤지만 입에도 대지 않는다. 입맛이 참 저렴하게 까다롭다고 해야할까. 연두가 왜 먹는것만 먹고 원래 놀던 장난감만 쓰는지 대충 이유는 알것 같다. 이건 또 다른 글에서 이야기를 풀어봐야지.
녀석을 키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츄르를 줘도 츄르 간식통 앞에서 하루 종일 울어대길래 불러놓고 훈육을 했다. "츄르는 간식이니까 하루 한개만 먹는거야"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초보 냥집사라서 강아지처럼 교육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연두는 그래도 틈만나면 매일 츄르 간식통 앞에 앉아서 울었다. 고양이는 쉽게 훈육이 되지 않는다는걸 그 때 깨달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는 그당시 출장이 잦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긴 해외 출장에는 주변인한테 급식을 맡기고 떠나기도 하지만, 짧은 타지방 출장 때는 새벽부터 늦은 저녁이나 다음날 새벽까지 애를 혼자 두던 시절이었다. 츄르통 앞에서 시위하던 연두가 내가 없을 때 결국 츄르통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새벽에 집에 들어와보니 츄르통은 다 뒤집어 엎어져 있었고 집안 바닥에 츄르가 뒹구르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건, 그 뒹굴고 있는 많은 츄르중 연두가 입에 댄 츄르는 딱 하나였다. 하나만 홀쭉하게 츄르가 빠져나가 있고 나머지는 이 자국이 있기도 했지만 모두 내용물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집사가 늦게 와서 혼자 츄르 파티를 할까 하다가 집사와의 약속을 지켜 딱 한개만 먹은 것이다. 고양이는 훈육은 되지 않지만 약속은 지킨다. 이런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그 뒤로도 연두의 츄르통 앞 시위는 계속됐지만, 내가 없는 날에는 츄르통을 건들지는 않았다. 집사가 하루에 약속한 1개의 츄르를 꼭 줄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까? 츄르통 여는 법을 알지만 그 뒤로는 한번도 열어서 먹지 않았다는게 신기하다.
연두를 병원에서 데리고 오면서 이제 하루 1츄르가 아닌 하루 2 츄르를 약속했다. 지난 8년동안 살면서 하루 1츄르 약속을 거의 대부분 지켜왔다. 그러니까 하루 2츄르 약속은 연두 묘생에 엄청나게 큰 변화인것이다. 연두 폐에 있는 종양이 점점 커지면서 식도를 누르게 되어 건사료 먹는게 어려워졌다. 다행히 병원에서 준 소염제와 구토억제제 등이 잘 먹혔는지, 어제부터 원래 먹던 건사료를 잘 먹기 시작했지만... 언제까지 건사료를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애석하게도 폐 속 종양은 계속 조금씩 연두의 식도를 차지할테니까.
연두가 건사료를 아예 못먹게 될 때를 대비해서 습식사료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다. 연두가 좋아하는 건 챠오츄르> 템테이션> 로얄케닌 건식사료> 뉴트리플랜 순이다. 여기에 더 많은 후보지를 마련해 놔야 건사료를 대신할 수 있을텐데 걱정이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연두의 츄르앞 시위가 아픈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제부터 자꾸 츄르를 하루에 3개씩 주고있다. 약해진 내 마음을 잘 이용해 먹는 녀석, 그래 그거라도 먹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