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머와 에디'(Homer & Eddie/1989년)는 정신박약자인 백인 남성과 시한부 생명인 흑인 여성이 우연히 애리조나주에서 오리건주까지 함께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둘은 대조적이다. 남성은 가족을 찾아간다. 반면, 여성은 내일이 없는 삶을 산다. 그런 둘이 함께 여행하며 우정과 가족애를 생각하게끔 하는 로드무비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호머. 야구에서 홈런을 뜻하는 말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음과 같이 자신을 소개한다. "홈런과 같은 의미다. 성은 란자. 호머 란자. 마리오 란자와는 친척도 아니다." 여기서 마리오 란자는 'That Midnight Kiss'로 유명한 미국의 테너 가수다.
홈런이라는 이름을 가진 만큼, 열렬한 야구 팬이다. 영화 시작에 나오는 그의 방에는 많은 야구책과 야구 카드, 선수 사진 등이 장식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권이 프랭크 로빈슨의 자서전 'My Life is Baseball'이다. '내 인생은 야구'라는 말은 호머의 삶에도 해당한다.
사실 호머에게 야구는 삶이라기보다 원수에 가깝다. 그가 정신박약자가 된 것도, 부모와 헤어져 살게 된 것도 야구 때문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리틀야구에서 3루수 겸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어느 경기에서 한눈팔다가 투수의 견제구에 머리를 맞으면서 그의 인생도 꼬이기 시작한다. 뇌에 이상이 생겨, 정신박약자가 된 것. 게다가,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살게 됐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가 사는 오리건주를 향한다. 그러나 강도를 만나 전 재산인 87달러를 빼앗기고, 부랑자로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에디와 함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만나고 호머도 에디도 인간적으로 성숙한다. 물론, 그 성숙하는 과정이 다소 상투적인 동시에, 공감을 얻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게 아쉽지만.
어쨌든 호머가 자기 방을 떠나기 전에 거울을 보면서 모자를 고르는 장면이 있다. 다양한 모자 가운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캡도 눈에 띈다. 이것저것을 쓰며 마음에 드는 모자를 고르는 장면은 영화 '엠마뉴엘'(Emmanuelle/1974년)에서 실비아 크리스텔이 마리카 그린의 빨간 모자를 이리저리 쓰면서 예쁜 척을 하는 장면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야구는 흔히 집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스포츠라고 한다. 그것을 단숨에 실현하는 게 홈런, 즉 호머다. 그러나 영화에서 호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편한 진실. 게다가, 단숨에 집으로 돌아오는 역전 홈런도 호머 혼자 힘으로 때려낸 것은 아니다. 긴 여행을 통해 호머는 어두운 과거와 결별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려고 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에디와 관련한 오해가 부른 사고.
영화가 끝난 뒤, 생각해본다. 과연 호머는 혼자서 역전 홈런을 때려낼 수 있을까? 단순히 애리조나의 부모님 집까지 오는 과제가 아닌 진정한 홀로서기를. 그것은 야구 경기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목표일 것이다. 왜냐하면, 호머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주위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야구도 마찬가지다. 한 시즌 144경기. 그 가운데 한 개인이 잘해서 이기는 경기도 있을 것이다(그것도 세세하게 따지면 팀으로 이긴 게 되지만). 그러나 대부분 승리는 팀으로 이룬 결과다.
개인과 사회.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서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런 개인에 대한 사회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끔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