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어느 날 갑자기 밝게 빛나며 긴 꼬리를 드리우고 나타나는 먼지와 얼음 덩어리. 그것이, 고대로부터 인류에게는 경이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전쟁과 기근, 중요한 인물의 죽음 등을 알리는, 불길한 전조로 여겨졌다. 길가메시 서사시나 요한복음서 등에서는 인류의 죄악에 대한 하늘의 천벌로 비유되어 있다.
다만 이 공포는 사실이 아닌 무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혜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두려움에 벌벌 뜬 것이다. 요즘 누가 혜성이 온다고 벌벌 뜰까. 망원경 등을 들고 관찰하기 좋은 곳을 찾는다고 야단법석을 뜰 뿐이다.
영화 '맥시멈 오버드라이브'(Maximum Overdrive/1986년)는 혜성이 지구에 가까이 다가온 어느 날, 인류의 공포를 그리고 있다. 혜성의 영향 때문인지, 지구상의 모든 기계와 전자제품이 자아를 가지게 되며,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믹서기가 오작동을 해 종업원을 다치게 하는 것은 애교 수준. 잔디깎기가 사람을 덮치거나 트레일러와 트럭 등 자동차도 사람을 향해 돌진한다. 또 한창 차량이 지나갈 때 가동교가 오작동을 일으켜 대형 사고를 일으킨다.
평온한 일상의 상징 야구 역시 위협받는다. 리틀리그 지도자는 타격연습기로 변신한 음료수 자동판매기의 투구(?)에 맞아 죽는다. 또 선수들은 폭주한 로드롤러의 공격에 혼비백산. 그 선수 가운데 한 명인 디크(홀터 그레이엄 분)는 기계의 위협을 뚫고 휴게소에 돌아오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유일한 피붙이인 아버지의 죽음.
기계에 둘러싸여, 휴게소 한 건물에 갇힌 디크를 비롯한 사람들. 여기에 외부와는 연락이 끊긴 상황. 즉, 그들은 기계의 위협만큼이나 고립이라는 불안과도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실질적 공포와 심리적 공포. 그 두 가지가 서로 교차하며 공포를 배가시킨다. 다만 딱 거기까지다.
실제로, 직접 메가폰을 잡은 스티븐 킹 본인조차도 이 영화는 실패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중반의 긴장감이 마지막까지 유지되지 못한 게 무엇보다 아쉽다. 다소 허망한 마무리에는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기계에 대한 두려움, 스티븐 킹다운 요소도 있어, 한 번 볼 가치는 충분하다.
어쨌든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어느 야구인은 "야구에서는 알파고가 힘을 쓸 수 없다. 야구는 순간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바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결단의 근거에는 경기 상황이나 일정 등은 물론, 상대 투수나 타자, 우리 투수나 타자 등에 대한 몸 상태나 장•단점 등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런 것을 알파고가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야구 경기에서 일어나는 경우의 수는, 바둑과 비교하면 사막 속에서 쥔 한 줌의 모래에 불과하다. 장•단기적인 데이터가 갖추어진다면, 알파고가 감독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알파고가 야구 경기를 어떻게 운영할지 궁금한 부분도 적지 않다.
과연, 현실의 감독처럼 좌우 놀이와 무수한 작전을 통한 감독 야구를 할까? 또한, 어떤 타순을 짤까? 테이블세터와 중심 타선의 구성 등에서 현실의 감독은 물론, 세이버메트릭스와도 어떤 차이점이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바둑이 그랬던 것처럼.
다만 동기부여 등 선수 관리는 알파고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것은 인간의 영역이며, 실제로 야구에서 감독이 있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알파고의 팀과 인간이 감독인 팀이 경기를 펼치면, 어느 팀이 이길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