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7
기원전 399년, 아테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다. 일흔 살이었다. 그가 남긴 저서는 단 한 줄도 없다. 평생을 말로만 가르쳤다. 아고라 — 시장 한가운데 — 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상대가 답하면 또 물었다. 답이 허물어질 때까지 물었다. 허물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생각이 솟아올랐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었다.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질문과 응답. 눈을 보며 생각을 밀고 당기는 과정. 아테네의 아고라에는 교실도 칠판도 시험지도 없었다. 있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뿐이었다. 2,400년 전에 이미 교육의 원형이 완성되어 있었던 셈이다. 학원도, 교과서도, 수능도 없이.
그 시절, '똑똑하다'는 것은 '잘 기억한다'는 뜻이었다. 위대한 음유시인은 오늘날의 아이돌 스타였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서 노래하는 사람이 청중 수백 명을 모았다. 중요한 법정 변론은 수천 명의 시민의 기억 속에 그대로 저장되었다. 그 시대의 하드디스크는 사람의 머리였고, 그 용량은 놀라울 정도로 컸다.
소크라테스는 강했다. 아테네의 가장 뛰어난 정치가, 장군, 시인이 그 앞에서 논파당했다. 그런 소크라테스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것이 있었다. 칼이 아니었다. 독배도 아니었다. 새로운 기술이었다. 문자.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그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의 신 테우스가 문자를 발명하여 신들의 왕 타무스에게 바쳤다. "이것은 기억과 지혜의 묘약입니다. " 타무스의 대답은 차가웠다. "이것은 기억의 묘약이 아니라 망각의 묘약이다. 사람들은 글자에 기대어, 자기 영혼 속에서 기억하는 법을 잊게 될 것이다. 바깥의 기호에 의존하여 안의 힘을 쓰지 않게 될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이 우화를 인용하며 경고했다. 글로 쓰인 지식은 죽은 지식이라고. 물어도 대답하지 못하고, 반박해도 침묵하는 것이라고. 살아 있는 대화만이 진짜 앎에 이를 수 있다고.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문자에 의존하는 것은 운동선수가 자기 힘으로 근육을 키우지 않고 기계에 몸을 맡기는 것과 같았다. 글은 물어도 답하지 못하고, 오해해도 변명하지 못하는 벙어리라고 했다. 한번 세상에 나온 글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떠돌아다니는 '고아'라고.
2024년에 "AI가 인간의 사고력을 퇴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기원전 370년에 "문자가 인간의 기억력을 퇴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 두 문장 사이의 거리는 2,400년이다. 그런데 구조가 정확히 같다. 새 도구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빼앗을 것이라는 공포.
소크라테스의 공포는 맞았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맞은 부분부터 보자. 문자가 퍼지자 인간의 기억력은 실제로 줄어들었다. 구술 시대의 음유시인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전편 — 15,693행 — 을 외워서 노래했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서사시 전체가 들어 있었다. 문자가 발명된 뒤, 그런 인간은 사라졌다. 외울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지금 우리가 전화번호를 못 외우는 것과 같다. 스마트폰이 대신 기억해주니까. 소크라테스의 진단대로, 도구는 그것이 대체하는 능력을 약하게 만든다. 계산기가 암산을 약하게 만들었고, 네비게이션이 길 감각을 약하게 만들었다. 맞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기억은 줄었지만, 사유는 깊어졌다. 암기에 동원되던 뇌의 자원이 분석과 비판으로 돌아갔다. 글로 적으면 다시 꺼내볼 수 있으므로, 어제의 생각 위에 오늘의 생각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구술은 매번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문자는 이어 쓸 수 있었다. 철학이 체계적 학문이 된 것은 문자 이후의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 정치학, 시학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기억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2,400년을 살아남은 것은, 제자 플라톤이 그것을 글로 적었기 때문이다. 글을 두려워한 스승이 글 덕분에 불멸했다. 인류 최초의 기술 비관론자가 자신이 비판한 바로 그 기술에 의해 역사에 남았다. 이보다 정확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나는 이 아이러니를 교실에서 매일 본다. AI를 거부하는 교사가 있다. "아이들이 생각을 안 하게 된다"고 걱정한다. 소크라테스의 문장을 현대어로 번역하면 정확히 이 문장이다. 그 교사의 걱정은 진심이고, 부분적으로 맞다. AI에 의존하면 사고력이 퇴화할 수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놓친 것을 그 교사도 놓치고 있다. 도구가 빼앗는 것만 보고, 도구가 여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 AI를 잘 쓰는 학생은 사고력이 퇴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출발선이 높아진다. 검색이 기억을 대체했듯, AI가 기초 분석을 대체하면 사고는 더 깊은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2,400년 전에 이 가능성을 보지 못한 것은 그의 한계가 아니라 시대의 한계였다. 그 한계를 우리가 반복할 이유는 없다.
1,800년이 흘렀다. 1450년,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라는 금세공업자가 금속 활자로 책을 찍어냈다. 이것이 인쇄술이다. 그 전까지 책 한 권을 만들려면 수도승이 몇 달을 앉아 한 글자씩 베껴 써야 했다. 아름다운 필사본 한 권의 가격이 농장 하나 값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하루에 수백 부를 찍었다. 책값이 100분의 1로 떨어졌다. 수도원 서고에 갇혀 있던 지식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인쇄소는 오늘날의 IT 스타트업과 닮아 있었다. 초기 투자금이 컸고, 기술이 불안정했으며, 수요가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하지만 수익이 나기 시작하자 폭발적으로 퍼졌다. 구텐베르크 이후 50년 만에 유럽 200개 이상의 도시에 인쇄소가 들어섰다. 1500년까지 약 800만 권의 책이 인쇄되었다. 당시 유럽 인구가 약 8,000만 명이었으니, 인구 10명당 책 한 권이 새로 생긴 셈이다. 그 전까지 유럽 전체에 존재하던 필사본이 수만 권에 불과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50년 만에 세상의 지식 총량이 수백 배로 뛴 것이다. 지금 말로 하면 "지수적 성장"이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이 좋아할 만한 곡선이 1450년에 이미 그려지고 있었다.
당연히 공포가 따라왔다. 베네치아의 인문학자 필리포 디 스트라타는 인쇄업자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펜은 처녀이고, 인쇄기는 창녀다. " 지식이 아무에게나 퍼지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베네치아의 또 다른 학자 니콜로 페로티는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 인쇄물 검열을 요청했다. 너무 많은 책이 "학문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이유였다. 소크라테스가 문자를 두려워했듯, 15세기의 지식인은 인쇄를 두려워했다. 두려움의 구조가 같다. 지식이 너무 쉽게 퍼지면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 지금 "AI가 쓴 글은 진짜 지식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500년 전 "인쇄된 책은 진짜 책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의 후손이다. 그리고 500년 전의 그 사람은, 2,400년 전 소크라테스의 후손이다. 혈통이 아니라 공포의 계보. 새 도구 앞에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긋고, 그 경계 안쪽에 서려는 본능.
그러나 인쇄술이 가져온 것은 타락이 아니라 혁명이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문에 95개 논제를 붙였다. 이전이었다면 지역 소동으로 끝났을 사건이다. 누군가가 그것을 인쇄했다.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한 달 만에 유럽을 뒤흔들었다. 루터 자신이 놀랐다. "나는 독일어로 설교했을 뿐인데, 인쇄술이 그것을 온 세상에 전했다. " 성경이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영어로,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찍혀 나왔다. 사제의 입을 거치지 않고 자기 눈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이 생겼다. 교회의 지식 독점이 무너졌다. 종교개혁은 신학적 사건이기 전에 기술적 사건이었다. 루터의 저작물은 1517년부터 1520년 사이에 약 30만 부가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30만 번 복제되었다. 루터가 특별히 용감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전에도 교회에 반기를 든 사람은 있었다. 얀 후스는 1415년에 화형당했다. 존 위클리프는 죽은 뒤에 무덤이 파헤쳐졌다. 그들에게 없었고 루터에게 있었던 것은 용기가 아니라 기술이었다. 인쇄기. 한 사람의 목소리가 수만 부의 팸플릿이 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것. 그 속도를 교회는 막을 수 없었다. 금서 목록을 만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금서에 오른 책은 더 많이 팔렸다. 지금 교실에서 ChatGPT를 금지하면 학생들이 VPN으로 우회하는 것과 같은 풍경이다. 500년 전에도 결과는 같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갈림길이 있다. 루터와 칼뱅은 같은 인쇄술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했다. 루터는 농촌 경제에 기반한 사람이었다. 이자를 죄악시했고, 인쇄술을 오직 "신의 말씀을 전파하는 도구"로 보았다. 칼뱅은 달랐다. 상업 도시 제네바에서 활동했고, 이자를 허용했으며, 근면과 절약을 미덕으로 올려놓았다. 같은 기술이 다른 경제적 토양 위에서 전혀 다른 열매를 맺었다. 기술 자체에는 방향이 없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그 기술을 쥔 사람이 서 있는 자리다. 2024년의 AI도 똑같다. 입시 체제 안에 서 있는 사람에게 AI는 시험 준비 도구다. 교육 혁신 쪽에 서 있는 사람에게 AI는 해방의 도구다. 도구는 같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를 뿐이다.
삼성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시절, 같은 기술을 두고 부서마다 해석이 갈리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피처폰 사업부는 "유행"이라고 했고, 소프트웨어 사업부는 "혁명"이라고 했다. 결과는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기술을 읽는 눈은 그 사람이 서 있는 플랫폼에 달려 있다. 루터의 농촌과 칼뱅의 상업 도시가 그랬듯이. 지금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도 같은 갈림길이 보인다. AI를 시험 준비 도구로 쓰는 학원과, AI를 프로젝트 도구로 쓰는 학교가 있다. 같은 ChatGPT인데, 한쪽에서는 수능 기출 풀이를 시키고 다른 쪽에서는 사회 문제 분석을 시킨다. 기술이 교육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쓸지 결정하는 것이다. 루터와 칼뱅의 갈림길이 종교 전쟁으로 번졌듯, 이 갈림길도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인쇄 제국도 영원하지 않았다. 400년간 세상을 지배했다. 정점이 있었다. 1842년, 찰스 디킨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지금의 글로벌 슈퍼스타였다.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디킨스를 맞았다. 무도회가 열렸고 만찬이 차려졌다. 대통령까지 만났다. 작가가 록스타인 시대. 활자의 제국이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1858년, 에이브러햄 링컨과 스티븐 더글러스의 정치 토론. 한 회당 3시간. 일곱 차례에 걸쳐 벌어졌다. 청중은 수천에서 만 명이 넘었고, 서서 들었다. 지루해하지 않았다. 긴 문장, 복잡한 논증, 치밀한 반박. 그것을 따라갈 수 있는 뇌가 있었다. 인쇄 문화가 만들어낸 뇌였다.
그 뇌가 바뀌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라디오가 왔다. 귀가 눈을 이겼다. 1950년대에 TV가 왔다. 영상이 활자를 밀어냈다. 2000년대에 인터넷이 왔다. 모든 것이 동시에 쏟아졌다. 2024년, 유튜브 채널 '라이언의 세계'. 장난감을 뜯는 아이의 영상이 연간 수백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 디킨스에서 라이언까지. 400년의 인쇄 제국이 완전히 무너졌다. 3시간 토론을 듣던 청중의 뇌와 15초 쇼츠를 스크롤하는 뇌는 같은 기관이지만 같은 뇌가 아니다. 인쇄술이 훈련시킨 뇌는 선형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 한 줄, 논리의 사슬을 따라가는 뇌. 디지털이 훈련시킨 뇌는 동시다발적이다. 여러 개의 창을 오가며 정보를 조합하는 뇌. 어느 쪽이 우월한 것이 아니다. 다른 도구가 다른 뇌를 만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뇌는 대화를 위해 최적화되어 있었다. 디킨스의 독자의 뇌는 긴 서사를 따라가기 위해 최적화되어 있었다. 라이언의 시청자의 뇌는 빠른 전환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각각의 시대가 각각의 뇌를 만들었고, 그 뇌는 그 시대에 최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AI가 또 다른 뇌를 요구하고 있다. 검색하는 뇌도, 암기하는 뇌도 아닌, 질문하는 뇌.
매번 같은 패턴이다. 새 도구가 온다. 기존 권력이 두려워한다. 선구자가 먼저 활용한다. 세상이 바뀐다. 그리고 바뀐 뒤에야 사람들은 깨닫는다. 두려워할 것은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두려워하느라 허비한 시간이었다고. 후스가 화형당하고 100년 뒤 루터가 승리한 것은, 루터가 더 용감해서가 아니라 인쇄기가 있어서였다. 지금 교육을 바꾸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것은 용기가 부족해서일까, 도구가 부족해서일까. AI라는 도구가 왔다. 도구 탓을 할 시간은 끝났다.
소크라테스는 문자를 두려워했다. 문자는 기억을 죽였지만 철학을 낳았다. 교회는 인쇄술을 두려워했다. 인쇄술은 권위를 무너뜨렸지만 개인의 사유를 열었다. 우리는 AI를 두려워하고 있다. AI는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낳을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 플라톤이 될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새 도구를 거부하고 제자에게 구술로 가르쳤다. 플라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되, 그것을 새 도구 — 문자 — 로 기록하는 쪽을 택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위대했다. 그러나 그것을 2,400년 뒤의 우리에게 전달한 것은 플라톤의 선택이었다. 도구를 거부한 스승이 아니라, 도구를 활용한 제자가 역사를 바꿨다.
플라톤은 스승의 공포를 글로 적었다. 그 아이러니가 2,400년을 건너 우리에게 도착했다. 소크라테스가 옳았다. 문자는 무언가를 빼앗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틀렸다. 빼앗은 것보다 준 것이 더 컸다. 구텐베르크도 옳았다. 인쇄술은 세상을 뒤집었다. 그러나 뒤집어진 세상 위에 새로운 질서가 세워졌다.
모든 제국은 스스로가 영원하다고 믿는다. 소크라테스의 구술 교육이 그랬다. 구텐베르크 이전의 필사 문화가 그랬다. 인쇄 제국이 그랬다. 400년의 지배. 그것도 끝이 있었다. 디킨스가 록스타였던 시대가 끝났듯, 교과서가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던 시대도 끝나고 있다. 제국은 자기가 영원하다고 믿는 순간에 가장 취약하다. 소니의 트리니트론이 그랬다. 다음 챕터에서 그 이야기를 하겠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제국은 무엇인가. 학력, 학벌, 시험 점수로 쌓아올린 교육 체제다. 이 제국은 200년간 견고했다. 프로이센의 의무교육에서 시작되어, 산업혁명과 함께 전 세계로 퍼졌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교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대한민국의 수능은 이 제국의 최첨단 무기다. 매년 11월, 65만 명의 학생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같은 시험을 본다. 비행기가 멈추고, 수험생을 태운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린다. 국가 전체가 이 의식을 위해 정지하는 날. 소크라테스가 보면 경이로워할 것이다. 2,400년 전 아고라에서 한 명 한 명과 대화하며 가르쳤던 교육이, 65만 명을 동시에 줄 세우는 시스템이 되었으니까. 이 제국도 예외일까.
한때 세계를 지배한 기업이 있었다. 이름은 소니. 트리니트론이라는 최첨단 무기로 TV 시장을 30년간 지배했다. 그 제국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패러다임 전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