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픽사의 금자탑.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픽사는 디즈니와 달리 꿈과 희망을 낙관적이고 밝게만 표현하지 않는다. 저변의 어두운 기운이 있음에도 마냥 비관적이거나 슬프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픽사를 사로잡는 것은 눈을 번쩍이게 하는 디지털 기술의 향연도 아이들과 같이 보러온 어른들이 추억을 곱씹으며 그때를 떠올릴 몇몇의 모티브들도 아닐 것이다. 물론, 위 둘도 픽사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결국에는 이야기 그 자체에서 오는 감동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코코'는 이 세 가지를 다 충족시킴과 동시에 지난 20여 년간 다채롭고도 풍부하게 우리와 함께해온 작품들 중 정점에 두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다.
멕시코 소년 '미구엘'은 전설적인 뮤지션 에르네스토를 동경하며 가수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가문에 신발공장가업을 잇길 바라는 할머니와 가족들은 음악의 꿈을 쫒기위해 가족을 떠난 선대의 기억으로 미구엘이 음악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한다. 미구엘은 1년에 한번씩 열리는 '망자의 날'에 에르네스토의 기타에 손을 댔다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선대에게 축복을 받아야지만 이승으로 돌아갈수 있는 미구엘은 자신이 뮤지션임을 증명하기 위해 도피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이상한 남자 '헥터'와 함께 모험을 하며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언뜻 보면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가족들을 이해시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데미언 샤젤의 '위플래쉬'와 '라라랜드'가 떠올려지기도 한다.)한편으로 가족영화로도 볼 수 있고, 예술가에 대한 영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보고나면 이것은 삶과 죽음의 그 중간에서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게 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이다. 결국 죽음을 통해 삶을 감싸안는 따뜻한 영화일 것이다.
마더 코코와 미구엘의 관계와 설정, 미구엘이 '죽은 자의 세상'으로 가게 된 것도 이 영화의 제목이 극중 다른 캐릭터의 이름이 아닌 왜 '코코'인지도 의미심장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더 코코와 미구엘은 모든 면에서 선명하게 대조되어 있고 미구엘이 '죽은 자의 세상'에 가게 된 것도 뮤지션의 꿈 때문에 우연히 가긴 했지만 이 영화에선 주인공임에도 내용을 면밀히 살피면 주인공이 아닌 죽은자와 산자를 이어주고 화합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집안에서 가장 어리고 혼자 가업을 잇지하려 않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죽은 자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 영화는 진중하게 질문하고 있다. '죽은 자의 세상'을 통해 사후세계를 휘황찬란하고도 창의적으로 세팅한 시각적인 기술과 함께 기억의 모티브를 새기고 있다. 마더 코코의 기억이 점차 흐릿해 지는 것과 미구엘 가문의 사진들 역시 모티브에 중요한 설정일 것이다. 극 종반으로 가게 되면 찢어진 사진의 의미도 중요해진다. 미구엘이 산자와 죽은자의 중간역할이라고도 했지만, 사실 '코코'역시 똑같다.
사후세계에서 어떤 사건으로 인해 사진을 전달받지 못한 미구엘은 마더 코코 앞에 서서 기억해달라며 울먹인다. 그러다, 아름다운 추억과 선율이 새겨진 음악을 들으며 흐릿해졌던 기억을 떠올린 '코코'는 같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이윽고 찢어진 사진의 한 조각을 펼쳐보인다. 미구엘과 함께 '코코' 또한 죽은 자와 산자를 연결시켜주고 화합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이 영화 클라이맥스를 잊지 못할 감동으로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픽사에서 최초로 멕시코 지역 사람들을 묘사한 것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망자의 날'이라는 축제가 실제 멕시코에서 열리는 것을 착안해 거대한 사후세계의 묘사를 독창적이고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꽃으로 다리를 만들어 죽은 자를 위한 길을 만드는 것에서 비롯해 죽은 이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다양한 동물 캐릭터들도 빛을 발한다. 아마, 진짜 꽃길이 있다면 이러한 것이 꽃길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코코'에는 관객들 마음을 흔들어 놓는 마법같은 장면이 3개가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가장 클라이맥스에서의 장면일테고, 다른 하나는 미구엘이 비디오 테잎을 보며 기타 연습하는 장면이다. 사실 경우에 따라서 그냥 흘려 보낼수도 있는 장면일 뿐만 아니라, 연주도 심금을 울리도록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악기를 배울 때 혹은 다른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배울 때의 처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독할 정도로 순수한 이 장면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기타를 칠때 마다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마지막 한 장면은 클라이맥스 전 장면으로 아름다운 딸에게 '기억해줘'라는 곡을 부르는 회상장면이다. 본래 음악(예술)이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 진다는 것과 그 둘의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을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공유시켜 준다는 점에서 이 장면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세개의 명장면은 픽사의 작품들 중 '업'에도 비견 될테고 라스트 신은 '토이 스토리 3'에도 견줄만한 명장면일 것이다.
'코코'는 아마 픽사 최초의 음악영화 일 것이다. 음악 자체도 영화와 어울려 이야기와 함께 스며들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의 히사이시 조 음악들처럼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귓가에 맴돌고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 '기억해줘' 또한 훌륭하게 자리매김 하고 있다. 거기에다 최전성기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셀 애니메이션 '아키라'처럼 오밀조밀하고 디테일한 그림들로 허무맹랑할 수 있는 세계관을 설득시키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스토리의 진행방향도 변화무쌍해서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텔링은 흡사 롤러코스터를 타듯 굴곡이 크다. 그 굴곡은 인위적인 굴곡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아이러니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끊이지 않을테니 말이다.(에르네스토와 헥터의 관계와 죽음을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픽사의 영화들은 언제나 쉬웠고 심플했다. 그렇다고 어린아이들에게만 환호할 영화들은 결코 아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갔던 부모들이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나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쉽다고 해서 깊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심플해서 넓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저마다 하나씩 있는 마음의 웅덩이를 흔들어 버리는 것은 픽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여타 다른 실사 영화들보다 더 넓고 깊은 픽사의 영화들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무시할 만한 장르가 결코 아니다.
픽사의 최고작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부분에서 탁월하다. 픽사에서 한번도 보여준적 없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전혀 선보이지 않았던 멕시코라는 문화에서 착안, 예술가와 가족 그리고 산자와 죽은자를 연결시켜 하나로 기억시켜주는 놀라운 스토리텔링 거기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디지털 기술과 작화가 있는데 두말할 나위 없이 정점에 있어도 불만이 없다. 픽사의 역사가 쌓은 금자탑일 것이다.
예술이 머무른 자리엔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공유해준다. 아이들에겐 추억이 쌓이고 어른들에겐 기억을 상기시키는 픽사의 작품들은 한사람 한사람에게 기꺼이 포옹한다. 그리고, 불멸의 음악이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 또한 이 영화는 알고있다. 사람이 죽어도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축복일 지도 모른다. 픽사가 혹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해도 여기 이 작품을 포함한 픽사의 영화들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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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 네이버 영화
사진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