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아이 옆에 누워 얼굴을 비비고 뽀뽀를 해대다 손을 잡고는 손가락 하나하나를 요리조리 살펴본다. 내가 하는 가장 강력한 애정 표현이다.
운전하는 남편 옆에 앉아서 이따금 거치대 위에 올라와 있는 그의 손을 잡아 본다. 가장 기다란 중지를 쭉 잡아당겨 보고 수천 번은 봤을 손톱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한다. “자기는 손이 참 예뻐”라는 말도 빼놓지 않고 건넨다. 참말로 손이 예쁜 사람이라 다행이다.
이제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그 예전에 친구들 간의 은밀한 수다 대부분은 “너의 이상형은 뭐야?”로 시작됐던 것 같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생기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몽글거려 심장을 간질이던 그때 말이다.
고등학교를 남녀공학으로 배정받았더랬다. 여중을 다녔던 지라 한 공간에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함께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 몹시도 어색해서 새 학기가 시작되고는 늘 허둥대고 눈동자가 초점을 찾지 못하고 버둥댔다. 물론 나의 행동과 눈빛을 보지 못하기에 함께 했던 친구들을 거울처럼 보면서 나도 그러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여자아이들은 같은 반 남아들을 탐색하느라고 그들이 교실 문으로 들어올 때마다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갔고, 보지 않은 척 다시 서둘러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 찰나의 눈빛에서도 마음에 드는 남자애와 그렇지 않은 애의 구분은 확실했다. 서로 친해진 친구들끼리는 서로 점수를 매기며 잘생긴 남자애가 일어서서 어디론가 움직이면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 뒤에서 수런거리기 일쑤였다.
고상한 척, 남자애들한테는 관심 두는 것은 유치한 일로 치부하고 싶었지만 분명 내 눈동자도 이곳저곳으로 굴러다니느라 꽤 바빴을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또래들은 채 자라지 못해 키가 작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듬성듬성 얼굴에 돋은 붉은 여드름은 미덥지 않았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 건지, 교복 품새가 이상한 건지 다리는 짧고 어깨는 좁아 보여 영 볼품이 없었다. 간간히 키가 쑥 큰 아이들이 반마다 보물찾기하듯 숨겨져 있었지만, 그들도 수업 시간에 발표하는 본새나 친구들과 노는 유치한 현장을 보고 있으면 맥이 쑥 빠져버렸다. 또래 남자아이들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고, 그 뒤로는 여자아이들의 눈동자는 더 이상 바삐 굴러다니지 않았다. 다만 우리보다 한 학년 혹은 두 학년 선배들을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하굣길에서 만나면 동시에 얼음이 되면서 눈동자만 득달같이 반짝였다.
중학교에서 홀로 그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마음을 두지 못하며 친구 찾기에 골몰하고 있을 때, 한줄기 빛처럼 동아리 모집 기간이 됐다. 그때도 유일하게 좋아하고 잘했던 것이 독서였기에 도서반에 들어가기로 했다. 마침 도서반은 학교에서 꽤나 인정받는 동아리였고, 입학 배치고사 성적으로 합격선이 있을 만큼 나름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모임이었다. 다행히 합격했고, 그렇게 도서반에 들어가 선배들과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이라야 도서관 지기를 하면서 책 정리를 하고 서클실에 모여 함께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서클실에 앉아있는 남자 선배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멋졌는지 도서반이 아니라 외모로 뽑혀서 모아놓은 집단이라 해도 믿을만했다. 이미 학교 내에서도 F4(당시 유명했던 만화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잘생긴 4명의 남자들)로 유명했고, 그 선배들 4명이 함께 다니면 홍해가 갈라지듯 여학생들이 비켜서서 대놓고 힐끔거리며 환호하기까지 했다.
선배들이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은 더 장관이었다. 공부를 진짜 안 하는 꼴통 학교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잘생긴 외모에 공부까지 열심히 하니 교내 선생님들의 신뢰까지 받던 이들이었다. 그들과 한 공간에 앉아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토록 가기 싫었던 학교가 순식간에 다르게 보였다.
1학년인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선배들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넷은 제각기 스타일이 달랐다. 도서반 ‘짱’ 오빠는 짙은 눈썹에 서늘한 눈매를 가진 송승헌을 닮았고, 이름 뒷글자만 따서 ‘빈’이 오빠라고 불렀던 이는 185가 넘는 큰 키에 허리를 찾을 수 없는 긴 다리, 그리고 조막만 한 얼굴을 가진 모델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한 오빠는 공부만큼 운동도 잘해서 늘 커다란 농구 가방을 옆으로 메고 다녔는데 우리는 그를 서태웅 이름을 따서 ‘웅’이 오빠라고 불렀다. 마지막 오빠는 나머지 셋 오빠에 비하면 외모가 빼어나지 않았지만 선한 외모에 후배들에게 맛있는 것을 잘 사주고 친절했던 ‘민’이 오빠였다.
우리는 선배들 애칭을 지어서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아마 알았겠지만…) 그들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날마다 스캔했다. 오빠들의 모든 것들이 수다의 소재가 됐고 하루를 버티는 윤활유였다. 빈이 오빠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소문에 후배들 몇 명은 며칠 속앓이를 하면서 울기까지 했던 그 시절이 아득하면서 당시의 우리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난 그들의 외모와 말투, 행동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면서 매력을 찾곤 했지만 가장 많이 주시했던 것은 바로 그들의 ‘손’이었다. 도서반 서클실에 둥그렇게 앉아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거나 공부할 때 얼굴을 힐끔거리기보다는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말을 할 때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손, 공부할 때 연필을 쥐고 있는 손과 책을 누르고 있는 반대쪽 손, 가방을 어깨에 멜 때 함께 올려놓은 손, 운동할 때 공을 잡거나 이마의 흐르는 땀을 닦아내던 그 손들에 마음이 먼저 가 있곤 했다. 아무리 멋지고 잘생긴 얼굴을 가진 이라도 손이 예쁘지 않으면 마음이 뚝 끊어졌다. 그리고 비록 외모는 조금 못나고 매력이 없어도 그 손이 예쁜 사람에게는 두고두고 눈길이 가곤 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얼굴보다 손이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 뒤로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손을 먼저 관찰했다. 남편을 만났을 때도 처음엔 그저 교회에서 같은 팀에 있는 이상한(?) 오빠라고만 여기곤 했다. 그러다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가까이서 밥을 먹으면서 그 사람 손을 봤었다. 얼굴도 손도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인데 젓가락을 쥐고 있는 그 손에 마음이 뺏겼다. 머릿속에 생각이 들자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오빤 손이 예쁘네요”라고 지체 없이 말하고 말았다. 그다지 친하게 지낼 때도 아니었는데 남자 손을 보고 예쁘다고 했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뭐 당시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엥? 손? 그런 말은 처음 듣네 “ 하고 넘어갔지만, 나의 관심이 그의 감정을 이끌게 한 추동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하곤 했다.
누구는 사랑하는 이와 첫 키스의 순간을 기억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순간보다 처음 손잡았던 그때가 더욱 또렷하다. 누구를 좋아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손잡기 아니겠는가. 남편도 당시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도 하지 않았는데 나란히 한강 변을 산책하면서 얼핏 닿는 서로의 손길에 움찔대며 이대로 손을 잡아도 될지를 고민하는 것이 여실히 보였다. 잡고 싶으면 확 잡을 패기라도 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용기도 못 내고 쭈뼛거리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고 모자라 보이기도 했다. 한참을 그런 상태로 산책하면서 서로 의미 없는 말들만 주고받다가 결국 물어왔다. “손 잡아도 돼?”라고 말이다.(뽀뽀해도 돼..라고 물어봤으리라는 것도 자연스레 연상된다….) 머리로는 ‘우리가 손을 왜 잡아요. 무슨 사이라고…’ 말해야 한다했지만, 닿을 듯 말 듯 서로의 손이 스칠 때 움찔거린 건 비단 그 사람만은 아니었기에 냉큼 ”네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긴장하며 서로 마주 잡았던 손을 지금까지 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F4오빠들은 지금 누구 손을 잡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제는 손을 잡아도 그때 느꼈던 찌릿한 정열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그와 손잡는 것이 좋다. 마음이 고단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앞에 그의 손을 꽉 잡아본다. 그의 예쁜 손을 어루만지고 둥그렇게 잘생긴 손톱을 가만히 보고 있음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낀다. 그와 나눈 사랑의 언어와 행위에서 모름지기 손의 역할이 컸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