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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Jun 25. 2021

마흔에 깨달은 진짜 '영어 공부법'

 


"사십 대에는 좀 넉넉한 시간의 옷이 필요한 것 같다. 빈틈없이 날카로운 잣대는 늘어진 뱃살 드러나는 쫄티처럼 이제 내게 안 어울린다. 갑갑하고 각박하다. 남 보기에도 안 좋고 나도 불편하다. 야무지게 살려니 체력이 달린다. 오래된 핸드폰처럼 일 하나 처리하면 어느새 배터리가 한 칸만 남는다. 아무래도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때인가 보다. 게으름을 지혜의 알리바이로 삼지는 말되 게으름이 아닌 느긋함으로, 조급함이 아닌 경쾌함으로, 주변의 것들과 어우러지는 행복한 삶의 속도를 만들어나가야겠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내려올 때 볼 수 있도록."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中-




마흔이 되면서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것은 부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반대로 싫어하고 잘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바로 알기를 원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무턱대로 열심을 다하며 살았던 삶이었다. 성실함을 무기로 그냥 내게 주어진대로, 해야 하니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꾸역꾸역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한 삶의 태도는 살면서 내게 해보다는 득을 더 많이 가져다줬다. 그렇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즐기면서 기쁘게 했다는 기억이 없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은 자의적인 선택이 아닌, 수능 점수 줄 세우기로 자연스레 맞춰진 결과였다. 남들 보기에도 썩 나쁘지 않아 보였고,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수능 영어는 수학이나 과학보다는 나를 힘들게 했던 과목은 아니기에 만만하게 볼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맞닥뜨린 '진짜 영어'는 내 기대와 수준을 완전히 뒤는 것이었다. 토종 국내파 출신인 나는 특례입학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영문과에서 주눅이 들었고, 타고난 열심과 성실을 발휘해도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는 그들의 네이티브 아우라에 계속 자존감만 깎일 뿐이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영어에 심술이 난 내 마음을 살살 달래며 공부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영어를 가르치면서 돈도 벌고 나름 보람찬 30대를 보내왔다. 그렇지만 진짜 나에게 '영어'가 어떤 존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치가 떨리게 싫다'라고 소리쳐 외치고 싶었다.



아직도 '영어'는 낯설다.

다만 '영어공부'를 즐기는 여유가 생겼을 뿐,


그런데 전업 주부가 되면서 온전히 영어로부터 자유를 누려도 되는 때가 왔음에도 난 요즘도 매일 영어 공부를 한다. 심지어 영어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영어 실력이 절박하게 필요했던 그 시절보다 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한다. 우연히 함께 하게 된 동네 영어 원서 읽기 북클럽에서 만난 멤버들과 2주에 한 권씩 꼬박꼬박 영어 원서를 읽어 내기 위해서 매일 정해진 분량을 눈이 충혈되도록 읽고, 심지어 그 원서로 영어 토론을 하기 위해 영어 말하기 연습도 나 홀로 미친년처럼 짬이 날 때마다 중얼거린다. 한국 드라마는 안 본 지 오래됐고, 최대한 미드를 자막 없이 보려고 갖은 노력을 짜낸다.


아마 누가 이렇게 공부하라고 시켰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엔 이렇게 매일 같이 하는 것이 힘겹기도 했고, 이제는 그만 영어와 씨름하는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그런데 잠시 그렇게 영어와 멀어져 있다가도 난 이내 영어 공부가 그리웠다. 그 영어와 고군분투하는 그 시간이 이제는 내 위로와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영어 공부는 어느새 나의 확실한 취향이자 취미로 자리 잡았다. 난 지금도 결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매일 같이 밤마다 신랑에게 나의 늘지 않는 영어 실력에 관한 불평과 짜증을 쏟아 낸다. 늘 같은 불평을 하는 내게 신랑은 지치지도 않고 친절하게 들어주고 응답해준다. "그럼에도 매일 공부하는 게 대단하지."라고 말이다.


이제는 확실한 나의 취미가 된 영어 공부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정말 다양한 영어 공부 방법을 시도한 결과 내게 가장 즐거운 영어 공부 방법이 무엇인지 비로소 찾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나의 현 영어 실력보다 아주 살짝 더 어려운 아주 재미있는 영어 원서를 읽으면서 스토리와 주인공의 매력에 푹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손쉽게 읽히는 영어 문장을 읽는, 아는 자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도 중요한 팁이다.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수준에 너무 어렵지 않아야 한다. 내 수준에 어렵지 않다는 것은 읽은 내용을 반드시 혼자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저 희미하고 어렴픗하게 의미를 체감하고 넘어가는 것으로는 공부의 재미를 누릴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자기 계발서나 실용서가 재미있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인문학이나 역사서, 혹은 소설이 재미있을 수 있다. 나도 이런저런 유명한 원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봤다. 유명한 온라인 북클럽에서 쉽고 재미있다는 원서가 나한 데는 왜 그리도 어려웠던지. 또 혼자서 '내 실력은 역시나 이 정도였던 건가'라고 자조하며 홀로 속 끓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어쩌다 읽은 원서가 너무 재미있어서 며칠 밤잠을 줄여가며  혼자 다 읽고 난 후, 그 뿌듯함에 며칠을 콧노래 바람을 불었던 기억도 있다. 그 결과 나는 영어 원서만큼은 자기 계발서나 인문학보다는 소설이 재미있다. 너무 어렵고 두꺼운 것은 힘들고, 뉴베리 수상작들이 적당하지만 이제는 뉴베리는 조금 쉽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뉴베리를 읽으면서 미국 문화와 정서를 아주 깊숙이 이해할 수 있어서 그 맛에 계속 읽게 된다.


1년간 함께 읽은 원서들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결국 답은 사람이다!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큰 이유는 함께 공부하는 북클럽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본분은 모두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지만 나처럼 '영어'와 질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멤버들이 스쳐갔지만 결국은 영어와 애증관계를 오래 이어오고 있던 멤버들만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김없이 여기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을 목도한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지만- 물론 몇몇은 질투 날 정도로 화려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서로에게 동기부여를 받으며 즐기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자신 영어 실력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은 중도 포기로 손을 들어 항복한다. 나는 항복하고 싶지 않았다. 영어란 놈은 아직도 나와 싸울 대상임이 분명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과 손절하는 것은 누구보다 내게 손해라는 것을 이제는 나이 마흔에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도구 때문에 사람을 잃는 어리석은 일을 범하지 않기로 했다. 포기했을 때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지혜와 연륜이 어느새 생긴 모양이다. 나의 실력을 솔직히 인정하고 민낯 그대로 마주하는 것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용기를 잠깐 발휘하고 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게 마흔이 되어서야 가능해진다.


조승연이 <플루언트>에서 "외국어 공부는 연애만큼이나 타 문화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요구하는 감성 투자"라고  말한 것의 의미를 이제야 절절히 체감하며 깨우쳐 가고 있는 중이다.  연애까지 도합 15년을 함께 하고 있는 내 신랑과도 나는 늘 연애한다는 심정으로 그를 새롭게 탐구한다. 이 '영어'란 놈과도 그동안 수업이 이별을 고했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서 부단히 내 성질을 죽여가며 매일같이 끌어안고 온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마흔이 다 된 지금, 난 이제야 이 영어를 공부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영어' 그 자체를 즐거워한다기보다는 '영어 공부'의 과정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지만, 여하튼 즐겁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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