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중이다. 좋아한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실례가 될 테니까.
그리고 마음을 감추는 것은 내가 잘하는 것이니까.
작년 겨울 처음 그 사람을 봤을 때.
초봄에 내리는 눈처럼, 늦가을에 찾아오는 인디언 썸머처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일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 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던가,
막연한 어떤 간지러움 혹은 어떤 두려움 혹은 어떤 예감 같은 것을 미세하게 느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 조차도 너무나 신경쓰여서 제대로 그 공간에 있을수도 없게 만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그냥 짝사랑의 습관 같은 것이리라 스스로에게 알려주게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분명 그 어떤 이의 얼굴은 언제고 똑같은 모양이었을 텐데,
처음 봤을 때 서늘했던 그 얼굴은 이제 다정했다가 웃었다가 장난을 쳤다가 미소를 지었다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이기도 한다.
책상 다섯 개만큼 떨어져 있을 때는 티 안내고 좋아하는 것 정도야 너끈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상 하나 만큼의 거리에서는 너무너무 불편했다.
티가 날까봐 나도 모르게 티를 내고 싶어질까봐
간신히 참았다.
나는 야망이 없다. 아니 야망을 버렸다.
죽기 전에 아니 죽어서라도 내가 갖고 싶은 단 하나는 사랑인데
그거 하나만이 내게 없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많은 것에 감사하는 방법을 잃었네
매번 사랑을 찾아 헤매네.
다만 한 사람을 기다리네.
하릴없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세계에 발신하며
나는 기다리네.
그에게 나는 수신거부 목록에 있는 번호일까
아니면
발신번호표시제한 번호일까
아니면 그의 번호가 없는 번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