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러진 가치와 거짓된 삶, 당신은 무엇을 믿고 사나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나는 그랬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라며 계속 말을 토해냈다. 불행에 대한 응어리였다. 한 때 나는 '행복하니'라는 말을 안부 인사로 쓰고 '행복해라'라는 말을 작별 인사로 쓰곤 했다. 그럴 때마다 P는 내가 앞으로 영원히 보지 않을 것처럼 얘기한다며, 그런 말투를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뒤로 나는 그런 인사말의 빈도를 줄이려 노력했지만, 가끔씩 올라오는 충동까지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P도 이를 알아차렸는지 더 이상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인사는 우리 세상에 대한 고집이자, 나의 진심 어린 바람이었다.
P는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이 가난했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그 이후로 엄마와 살다가 지금은 독립해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아빠는 없었다. 아니, 없앴다. 그는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어렸을 적 학대의 기억이 나서 잘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아빠는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테지만, 적어도 그의 세상에선 없는 사람이었다.
P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싫다고 했고, 채워질 수 없는 큰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그의 앞에서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겠다'라고 말했다. 내 손은 계속 텅 빈 물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도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설움이 쏟아졌다.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영역. 하지만 넘어가고 싶지 않은, 넘어가서는 안될 것 같은 영역. 우리 사이는 그런 영역의 테두리가 맞닿는 부분에서 더욱 강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부모에게 '낳음 당했다'라는 말을 보았다. 가난의 되물림만큼 화가 나는 것은 없다고, 그들은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될 책임을 저버린 자들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은 봉양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연을 끊는 것이 낫다고 했다. 오히려 도와줘봤자 도리어 부려 먹히기 일쑤라고 했다. 그러니 그들을 버리고 자기의 인생을 사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이 말은 모두 몸이 아파진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 자신이 어렵게 모은 돈을 드려야 할지 고민하는 글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그들은 '당연한 책임'이라는 말을 썼다. 당연한 책임. 부모는 자식을 풍족하게, 바르게 키우는 것이 당연하고 자식은 그 밑에서 누릴 권리가 있다고 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잘못은 오로지 부모에게 있는 것이었다. 자식은 억울하게 '낳음 당해서', 원하지도 않았는데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피해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결혼도 하지 말라고 했다. 자식을 낳지 말라고 했다. 그냥 혼자 살다가 죽으라고 했다. 그들은 그게 '옳은 것'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그것을 도덕이라고 가르쳤으며, 나는 설령 부모가 가난하고 부족함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채워주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배웠다. 그것이 내가 배운 가치였고 질서였으며, 함부로 범접해서는 안 되는 진리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이런 가치관이 그저 환경의 차이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살아온 가정환경이 편했기 때문에,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 내가 부모님께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 부모님을 '사랑'해서인가, 아니면 '편한 환경에서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무슨 거짓된 삶을 살아온 것인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그저 하나의 관계일 뿐이었던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고 끊어질 수 있는 것이며, 때로는 반드시 끊어야 하는 것이었던가. 나는 부모가 자녀를 낳는 것이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인지를 생각해봤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너무 불행한 존재이지 않은가. 뿌리부터 어느 곳에도 당도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인데. 우리는 그저 그렇게 '낳음 당한' 사람이었던가.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 병마로 괴로웠던 시절, 나는 삶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이를 함부로 물려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인생 본연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자신이 없어 부모님께 죄송했고, 부끄러웠다. 그 시절 나의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왔던 것일까. 낳지도 않은 자녀에 대한 생각은 어디에서 왔던 것일까.
나의 20대는 이랬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부정당하면서, 가치의 혼란이 생기는 시절이었다.
나의 20대는 그랬다. 사람은 결국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사는 존재였다. 누구도 변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제는 행복이라는 인사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런 말을 쓰지 않아도 찾아오라고, 제발 찾아가라고 속으로 되뇌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그게 옳은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자신도 그럴 것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20대의 끝자락에서 21.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