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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우 Dec 23. 2022

봉화산

우리 동네 소개하기

고즈넉한 산골 마을, 종달새 지저귀는 봉화산 언저리에 나이가 지긋한 동네 어르신 한 분께서 뒷짐을 지고 산을 오르십니다. 산 꼭대기에는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피어나고 있고, 그 냄새에 환호하는 듯 찌르레기가 빽빽 울어댑니다.


“아니, 할아버지. 뭘 또 이렇게 사 왔어요?”


한 젊은 총각이 산 아래로 헐레벌떡 내려오면서 묻습니다. 이제 보니 어르신의 뒷짐 진 손에는 조그만 검은색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있습니다. 아직도 뜨끈뜨끈한 것이 장에서 사 온 옥수수임이 틀림없습니다.


“아이고, 재우야. 이놈 실한 것 좀 봐라. 우리 손주 멕일라고 얼른 사 왔지. 허허”


산 아래로 내려가 약 30분 정도를 걸으면, 제법 큰 시내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마다 큰 장이 열립니다. 봉화산 사람들은 그때만 되면 집에 필요한 생필품이나 라면, 통조림 같은 즉석식품들을 사 오곤 하죠. 나머지는 대부분 밭에서 직접 수확한 재료로 충당하는데, 특히 봉화산에서 나는 감자, 토란, 고추는 아주 질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장이 열리면 동네 할머니들이 머리에 한아름 큼지막한 보따리를 이고 가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하하. 할아버지도 참. 이거 주시고 같이 올라가요. 지금 점심밥 다 해놨어요. 아침부터 사라지셔가지고 깜짝 놀랐네.”


마을에 몇 남지 않은 젊은이로서 옆에서 60대 청년 회장님을 돕고 있는 재우 총각은 요즘 걱정이 한창입니다.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소식에 읍사무소에 신고를 해놓은 지가 좀 됐거든요. 이 외에도 두더지가 자꾸 마을의 조상님들을 모신 산소를 파헤쳐놓는 바람에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신성시되는 지역이라 함부로 파헤칠 수도 없고, 그저 후벼놓은 흙들을 다시 삽으로 정성스레 다지고 잔디를 입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차에 오늘 아침엔 할아버지도 말없이 사라지셔서 깜짝 놀랐나 보네요.


산 정상 즈음으로 올라가자 익숙한 풍경이 나타납니다. 오랜 전통이 있는 마을이지만, 집의 모습은 비교적 현대적입니다. 물론 아직 판자나 컨테이너 재질로 이루어진 집도 있지만, 조립식 집이 한때 유행했던지라 채광이 좋은 곳에는 귀농을 택한 몇몇 부부의 현대식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엔 오히려 한옥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있죠. 한옥 특유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가끔 산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한옥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읍에서 이곳을 관광 명소 또는 귀농하기 좋은 특구로 지정해 투자를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글쎄요. 그런데 봉화산 사람들은 별로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지금 모습 그대로가 좋거든요. 옥수수 하나에 웃고 떠들고, 낮에는 새소리를 듣고 밤에는 별을 볼 수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바로 이곳이 제가 사는 봉화산, 우리 동네의 모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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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개뿔! 여러분들은 착각하고 있어요. 특히 봉화산이 대체 어느 산골이냐고 묻는 사람들 잘 들으십시오. 봉화산은 엄연한 서울시 중랑구 신내2동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밥 짓는 연기는커녕 매캐한 자동차의 매연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여느 현대인들과 같이 그걸 먹고살아요. 낭만 따윈 없습니다. 낭만은 매연 마신 위장을 알코올로 소독할 때만 잠깐 환상처럼 오는 겁니다.


도시에 지친 현대인들, 귀농을 하고 싶다고요? 봉화산을 멀리 하십시오. 물론 아파트 단지 위쪽에 산이 하나 있고, 그 아래에 배 밭이 있고, 근처에 도시 주말 농장이 있긴 하다만, 엄청 조그맣습니다. 실제로 아빠가 귀농하겠다며 도시농부 자격증을 따고 주말 농장을 조금씩 하고 있긴 한데, 하는 것으로 보아 귀농 안 할 것 같습니다. 껄껄. 어차피 잘 됐죠. 저랑 엄마는 절대 안 갈 거거든요.


봉화산 위쪽으로는 정말 모형 같이 생긴 봉화가 하나 있고, 무당이 사는 집이 하나 있습니다. 봉화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전시에 사용합니다. 물론 북한이 쳐들어와도 사용은 안 하지만요. 아마도 워킹 데드나 스위트홈 같이 대 괴물 시대가 오면 유용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제가 봉화산을 중심으로 쉘터(Shelter)를 하나 만들 테니 찾아오세요. 만약 중랑구 봉화산에 봉화가 올라오면, 성공적으로 쉘터를 만들었다는 소리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좀비가 되었다는 소리니 찾아와서 한방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추가로, 무당집은 무서워서 안 들어가 봤으니 궁금하면 직접 가보시고 후기 좀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봉화산이 ‘도시’라고 했지만 사실 큰 도시는 아닙니다. 그냥 초등학교 하나, 아파트 단지 몇 개, 홈플러스 하나, 상가 단지 하나가 있습니다. 상가는 각 종목 별로 하나씩 들어가 있어 거의 독점입니다. 내과 하나, 치과 하나, 피부과 하나, 피자집 하나, 고깃집 하나, 아귀찜집 하나 뭐 이런 식입니다. 여기서 자리 잘 잡은 사람들은 망할 일이 없어요. 딱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안과가 없습니다. 망할 시력 검사하는데 중랑구청까지 갔어요. 안과 의사 분들 꼭 좀 연락 주세요. 여기 차리면 대박 나요.


이상, 우리 동네 봉화산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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