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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 Nov 16. 2020

자가격리가 답답해질 때

[자가격리편 #5] 공간의 힘

자가격리 6일 차. 변화가 필요한 시점.

‘공간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문득 이 문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답답함을 떨치기 위해서는 창 밖을 바라봐야 하는데, 지금은 캐리어가 창문 앞을 차지하고 있어 뭔가 불편하다.


저 캐리어를 치워버리려면 소파를 치워야겠구나. 어차피 앉지도 않으니까.

요 녀석. 아예 안 쓸 생각으로 발 거치대도 쇼파 위에 올려둔 상태


‘지금 여기서 죽은 공간이 어디지?’

눈길이 닿은 곳은 현관문 앞. 대충 팔로 재어보니 소파가 딱 들어갈 정도. 어차피 하루에 5번밖에 문 안 여니까.


그래서 옮겨버렸다!

딱 맞네 딱 맞아

그랬더니 이렇게나 넓은 공간이 생겼다.

다시 엎드려 청소하다 보니 침대 옆에서 손톱이랑 스테이플러 심이 나온다...? 지난번에 내가 놓쳤나 봐? 해도 해도 청소는 끝이 없네.

누구 나랑 같이 살고 있나요

그래도 이제 널찍하다.

오오오 뭔가 카페 같아

이제야 바깥을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햇살도 쬐고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다들 마스크를 안 쓴다. 진짜 안 써도 되는거 맞아...?

잘 바꾼 거 같아!! 이렇게 며칠 생활해봐야지.


일요일 오후라 그런가 《非诚勿扰》라는 유명한 커플 매칭 프로그램이 방영 중.

《非诚勿扰》

이어서는 부모님이 나오는 커플 매칭 프로그램.

《新相亲大会》

부모님이 나와서 그런지 구성이 독특한데, 남성 출연진이랑 여성 출연진이 직접 대면으로는 이야기를 못 한다. 부모님이 대신 계속 도전할 건지, 포기할 건지 정할 수 있다.

“우리 딸은 저런 남자 싫어할 거 같아. 포기.”

라고 버튼을 누르려고 하자 딸이 사회자에게 전화.

“우리 아빠 좀 바꿔주세요. (전화 바꿈) 아빠 나 저 사람 좋아요. 포기하지 마요.”

“왜, 너 남자다운 사람 좋아한다며?”

(남자 출연자가 로봇 연구자인데 모범생 느낌)

“아, 그런 거랑 달라요.”


일반적인 매칭 프로그램이랑 대화가 달라서 새롭다. 누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고르는 저런 세팅이 바람직한지 모르겠지만.


프로그램 보면서 메모했던 몇 가지 표현을 가볍게 풀어보면,

不如意(bùrúyì): ‘제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라는 표현을 쓸 때 如意를 쓰더라. ‘뜻대로 되다’에서 파생된 의미인 듯

牵手(qiānshǒu)成功: 커플 매칭 되면 서로 손을 잡아서 매칭 성공을 이렇게 표현

说实话(shuōshíhuà): ‘엄마, 솔직하게 말해봐요(妈妈,你说实话).’ 할 때 이 표현을 씀

理工科(lǐgōngkē) / 理工男(lĭgōngnán): 이공계 남자 출연자를 칭할 때 이렇게 사용

沉迷(chénmí) 工作: ‘일에 빠져서 여친이랑 결국 헤어졌다’고 말할 때 쓴 표현. 부정적인 의미의 ‘빠지다’인 걸로.

坦诚(tǎnchéng)地总结自己的缺点: 사회자가 본인의 장점을 이야기하라고 하니 남자 출연자가 단점을 솔직하게 고백. 그때 사회자가 ‘본인의 단점을 솔직하게 잘 말했다’라며 쓴 표현

不是勉强(miǎnqiǎng)的: ‘억지로 하는 거 아니다’라고 할 때 쓴 표현. 참 많이 쓰는 단어인데 매번 잊어버리네

相处(xiāngchǔ): 함께 살다, 지내다는 뜻. ‘남자는 상하이 살고, 내 딸은 광저우 살고. 그럼 둘이 어떻게 지낼 거니?(那你们应该怎么样子去相处呢)’라고 말할 때 쓴 단어

无所谓(wúsuǒwèi): 상관없다.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다는 상황에 사용. 이것도 많이 보는 표현인데 내가 쓰려면 没关系밖에 안 나옴...

直爽(zhíshuǎng): 헬스 사업하는 남자 출연자의 화법이 시원시원하니까 여자 출연진들이 이 형용사를 쓰더라.

爷们儿(yé menr): 여자 출연자가 남자 출연자 칭할 때 쓴 단어. 사전 찾아보니 남자라는 뜻


TV를 보면서 맨몸 운동을 했더니 오후 체온 측정 때 37.1도가 나오더라. 37도가 넘어서 순간 흠칫. 의료진분이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마 37.5도 넘어가야 미열로 분류될 거다. 앞으로는 체온 측정 시간은 피해서 운동해야겠다. 아껴뒀던 비상식량 초콜릿도 까먹고 달달한 주말이다.


격리가 끝나고 나면 빈둥빈둥하던 이 시간이 그리워지겠지. 소중히 여기며 잘 지내야지.


(+) 다음 날은 체온 측정 시간 피해서 움직였더니 다행히 36.4도! 휴.


(+) 이 글은 발행하기까지 무척 고민이 많았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1)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2) 내가 다시 글을 읽을 때 그 당시 느낌과 감상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어서다. 다른 SNS가 담지 못하는 감정선을 모아두기 위해서.


그래서 난 내가 브런치 초기에 써둔 파타고니아 글을 무척 좋아한다. 파타고니아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볼 수 있어서.


처음에는 나만의 일기장처럼 생각했다. 지금은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 만큼 뭔가 남는 거리가 있는 글을 써야 하지 않나 싶어 단순 감상글은 발행을 망설이게 된다. 내 시시콜콜한 일상은 SNS에 올려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앞으로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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