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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06. 2024

속절없다

   묻지도 않았는데 도로 건너편 이발소 오랜 단골이었다고 커밍아웃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그들이 쏟아내는 넋두리는 대동소이하다. 남편이 머리를 깎으면 아내가 면도를 해 주는 조건으로 요금을 내는 시스템이었는데 면도사 역할을 맡았던 늙은 아내가 힘에 부쳐 손에서 면도칼을 놓았는데도 요금은 그대로라는 게 골자였다. 면도를 안 하면 그것만큼 요금을 덜어내는 게 도리이거늘 하기 싫음 말라는 식으로 배짱 영업을 고수하는 행상머리가 배알 꼴린다면서 입에 게거품을 물면서까지 욕지기를 퍼붓는 손님도 더러 있었다. 오랜 단골을 예우해 주지 않는 섭섭함이 다분하다는 걸 깎새 눈치로 모르지 않는다.

   유서 깊은 이발소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이력이라서 라이벌 운운하는 것 자체가 가당찮다. 그럼에도 출근할 적마다 맞은편을 슬쩍슬쩍 곁눈질하길 잊지 않는 건 남들이 알 리 없는 영욕의 세월을 견디며 우직하게 일가를 이룬 장인의 뚝심에 경의를 표함은 물론 청출어람 청어람하려는 불온한 전의를 다지는 의식임을 숨기지 않겠다. 

   절대 우위자가 보기에는 자기 발톱의 낀 때만도 못하면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꼴이 가소로울지 몰라도 후발 주자로서는 가상일지언정 대결 구도를 짜놓고 밀어붙이는 저돌성으로 장사에 임하는 게 효과적이다. 벅찬 적수일수록 그를 극복해내고 말겠다는 일념이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깎새는 확신하니까. 선두 주자라고 방심만 하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앞선 자일수록 거리를 절대 내줄 수 없다는 집념으로 응전하다 보면 선도자와 도전자 상호 발전 가능성은 배가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인류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하지 않나.

   그러니 이런 식으로 도로 맞은편 이발소에서 깎새 점방으로 손님이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썩 달가울 수만은 없다. 손님 이동은 이발소 늙은 부부의 은퇴가 코앞에 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자 사어가 되다시피 한 '이발소'처럼 구세대의 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며 깎새로서는 더 나은 깜냥 쌓기를 부추기던 동력의 상실로 여겨져 서글프기까지 하다.

   새삼 인생사 속절없음에 통탄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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