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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08. 2024

당분간 쉰다는 안내문을 보고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쉽니다.'

   장사치가 아니 되었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문구에 그만 콱 박혔다. 당분간 쉴 수밖에 없는 그 개인 사정이 사정없이 마음을 후벼 파기 때문이다. 하늘로 날아갈 듯 급히 휘갈겨 쓴 손글씨가 급박하고도 중차대한 곡절을 품은 듯하다. 혹시 본인 혹은 식구 중에 발병하여 부득이 휴업을 결정한 것일까? 아니면 아득바득대며 산다고 나아질 게 없다는 자의식이 불현듯 동해 이왕 마음 먹은 거 여한 없이 푹 쉬면서 재충전한 뒤 생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겠다는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혹시 암만 '노~오~력' 해봐도 나아질 기미가 전혀 안 보이는 세간살이에 절망한 나머지 끝내 포기 수순을 밟으려는 것일까?

   '당분간'이란 단어는 또 왜 이리 애처로운지. 단어는 '앞으로 얼마간, 잠시 동안'이란 잠정성을 표명하지만 기실 '언제까지라는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모호성에 방점을 더 둔다. 하여 '당분간'은 그걸 쓴 당사자조차 언제 장사를 재개할지 기약이 난망하다는 걸 스스로 고백한 꼴이나 다름없어 남 일 같지 않은 심사가 더욱 비감해진다. 

   영세 자영업자한테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시간부사는 금기어다. 월세를 포함해 다달이 지불해야 할 고정비는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는 빚인 양 부채감을 이식시켜 장사치를 늘 옥죈다. 간혹 죽 쑤어 개 주는 짓을 왜 하나 회의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열정페이를 스스로한테 강요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그냥 버틴다. 영세 자영업자는 그러니 특히 아파서는 안 된다. 회복이 더딘 중병이라도 들면 그간 애써 쌓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라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분간 쉬겠다'라는 여지를 남겼겠지만 그걸 기다려 주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을 게다. 아니 거의 없다. 동병상련. 점방 문에 써붙인 안내문에 깎새가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는 까닭이겠다.


https://busanmbc.co.kr/01_new/new01_view.asp?idx=26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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