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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09. 2024

손편지

   생일 선물이랍시고 돈봉투만 건네기 변변찮아 보여 손편지를 써 동봉했다.


   네 나이 열여덟이라고 말했을 때 아빠는 놀라는 한편 무척 섭섭했단다. 꼬마 적 빈이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조막만한 몸집으로 아빠와 손잡고 아장아장 걷던 빈이로만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싶지만, 과욕이겠지?

   대학엘 곧 들어가면 머리는 더 굵어질 테고 더 어른스러워질 빈이는 만인이 좋아할 호감형 인간으로 지금보다 더 진화할 게 틀림없다. 그런 빈이에게 바람이 있다면, 세월이 지나도 어릴 적 순진무구했던 빈이만은 여전히 마음 속에 간직했으면 좋겠다.

   우리 막내딸 티없이 순수하고 착한 심성을 아빠는 영원히 사랑할테다.

   생일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막내딸!

   아빠가


   겨우 반 장짜리 손편지인데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갖춰 놓고 쓰는 손글씨가 일단 삐뚤빼뚤이라 마음에 영 들지 않았다. 펜을 은 손가락 마디마디에 익숙한 그립감이 서서히 들면서부터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 그 속에다 아비 마음을 욱여넣었다. 손편지는 정성이라는데 아마 편지지에 수놓은 글자가 발신인 얼굴을 닮아서일 게다.

   깎새 글씨를 보고 호방하고 예스러워 어르신 필체라고 부러워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그건 착시다. 자간과 행간 균형이 맞지 않아 삐뚤빼뚤 위태롭게 난립한 꼬락서니란 꼭 요점 빼먹고 중언부언하는 깎새 본인과 판박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리산지리산하는 초성 ‘ㅅ’이나 받침 ‘ㅆ’, ‘ㄹ’ 모양은 그걸 쓴 사람의 잔망스런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민망하기 그지없다. 흘려 쓰는 버릇이 오랜 고질이라 정자로 쓰는 걸 더 어려워하는 행상머리는 또 어떻고. 대서소가 과거의 유물이 된 지 오래인데 이제 와서 교정할 필요가 있나 싶다가도 이번처럼 펜대라도 굴릴라치면 그것도 일이라고 편지지 메우다 진이 다 빠진다. 스마트폰 없으면 생활이 안 되는 현실에서 손글씨로 끼적이는 게 참으로 구태의연한 짓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러모은 생각의 파편들을 손끝으로 정성껏 풀어내는 작업이 어쩌면 자신을 온전히 정돈시키는 정갈한 의식으로 아직 여겨서일 게다.

   2017년 2월쯤인가 교육부에서 내놓은 초등 1~2학년 교육과정 중 뜻밖의 내용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연필 잡기의 중요성을 절감해 아예 ‘한글기초 교육은 연필 잡기 → 자음 → 모음…’이라고 교육 과정으로 규정했다. 당시 한 일간지는 교육부 발표를 두둔하는 칼럼을 써서 글씨 쓰기와 같은 손동작이 뇌와 정신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짊어지고 다니는 백팩 속에는 여남은 자루 펜이 들어간 필통이 메모지와 더불어 백팩 속 주인인 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을 걷다가 혹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중에 퍼뜩 메모해야 할 게 생기면 필기구만 한 게 없다. 수정과 번복, 소거가 'Delete' 키 하나로 단박에 이뤄지는 스마트폰이 더 편리할 수 있겠으나 하얀 백지 위에 썼다가 지우고 그 밑에 다시 끄적이면서 전개해 나가는 생각의 점층은 유익하기도 하거니와 아날로그라서 아련한 감성이야말로 치명적이어서 쉽사리 펜을 내던질 수가 없다.

   스마트폰 하나가 만사형통인 시대에 일부러 수고 들인 수기로 안부나 근황을 전하는 짓이 자칫 객기로 비춰질지 모르겠다만 손바닥만한 액정 화면에 떼지어 웅성대는 글자 덩어리들 사이에서 번득이는 이기利器의 냉정함이 더 께름칙하다. 볼펜 똥을 닦아 내며 꾹꾹 눌러 쓴 손편지를 짧아서 애달픈 이 늦가을에 보내고 싶다. 혹 '당신 글씨에서 사람 냄새가 납니다'라는 답장이라도 올라치면 깎새는 미친듯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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