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내려오는 방법이 있을까? 자유로울 수 있을까?

by Tess

퇴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은 정말 무겁게 출근해서 무력하게 앉아있는다. 이곳을 떠난다고 하니, 쉬는 시간에 악착같이 내 것을 하려던 마음도 줄어든다. 그래서 모니터를 꺼놓고 엎드려 자는 날들이 많아졌다. 물론 체력적으로도 한계인 상황이다.

그러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란 책을 만났다.

와... 헤세의 문장은 하나 하나가 깊다. 도대체 얼마나 깊이 내면으로 내려갔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 조금이나마 그림자의 맛을 봤던 나는 헤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다층과 은유로 구성된 것이 슬쩍 보인다. 너무도 융거니안스러운 그!!! 실제로 융의 제자에게 정신분석을 받았다던데, 그래서인지 더더욱 융이 이야기하는 여성성, 남성성 그림자 그리고 이를 통합하는 모습들이 다 보인다. 헤세는 진실로 치열하게 자신의 내면을 봤던 사람 같다. 자기에게 가장 진솔한 사람으로 보인다. 요즘 괴테의 책이 유행인데, 나는 시선이 외부에 있는 사람보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작가에게 더 매력이 느낀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모범생이며 신학교 출신이었던 헤세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한다. 읽을 수록 모범생 한스의 시들어감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헤세의 다른 소설 '데미안'에서 그는 이상적인 친구를 만나(이 또한 자신이겠지만) 껍데기를 한꺼풀 벗어던지고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는 그렇지 못하다. 방향을 잃고 방황하다가, 깊은 우울에 빠지고... 또 다시 삶의 끈을 쥐어보려 그 순간 삶이 마쳐진다.(자신의 선택인지, 사건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것 또한 헤세의 의도적인 마무리같다)

으레 청소년/성장 스토리에선 모범생인 주인공이 어떤 내/외부적 갈등에 빠져 자신의 길를 벗어났다가 그걸 극복하고 본연의 삶을 산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그렇지 않다.

모범적이고 가족 및 타인의 인정을 기쁨으로 삼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인해, 정도에 벗어나 방황하는 것까진 맞다. 그러나 이 방황이 신경쇠약과 우울로 이어지고, 손 쓸 수 없어지는 상황까지 가버린다. 그렇게 한스는 신학교 엘리트에서 공장의 말단직원인 블루칼라의 위치까지 간다. 하지만 이런 방황에서도 한스는 살아보려했다. 이것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육체를 쓰는 삶에 적응하려 했다.

그러나 딱 그 순간, 그 시작의 순간에서 우울증의 발현으로 자살을 한 것인지, 실족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죽는다. 이게 얼마나 충격이던지!!! 읽고 나서도 먹먹하고 안타까워서 챗지피티에게 그 죽음의 은유와 상징을 물어볼 정도였다.

'왜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어야 하는가, 왜 한스의 죽음으로 끝나야만 했는가?'하는 질문에, 챗지피티는 '타이밍'이라고 했다. 살아보려해도... 자신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이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나도!!! 38살에 이혼과 독립을 함께 하면서, 자기의 삶을 사는 길에 들어섰는데, 한스는 겨우 학교를 졸업한(?) 중퇴한(?) 학생이지 않나!!!

회복 불가능한 시기를 놓치면 한스처럼 될 수 있다는... 어떤 경각심과 함께 공포까지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이렇게 읽고나니, 제목의 '수레바퀴'가 눈에 들어온다. 티벳에서 기도 할 때 돌리는 마니차도 떠오르고, 윤회의 상징 같기도 했다. 계속해서 같은 지점을 되풀이하는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다. 그걸 알아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업을 쌓는다는 불교의 메세지도 떠올랐다. 그렇다면 한스는 "그것을 끊어낸 것일까?

죽음으로써 그 수레바퀴에서 내려온 것일까? 한스의 다음 생은... 타인의 기대와 가족의 인정을 위해 자신을 갈아넣지 않을까? 온전히 자기를 위해 살 수 있을까? 그 다음 버젼이 헤르만 헤세일까?" 하며 여러 상상을 해봤다.

어찌보면 인생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혹은 알면서도 그 패턴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서 조금의 질적인 차이를 발생시킨다면, 다름을 위한 변화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일테다. 그래서 내가 작년 한 해동안 계속해서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집중한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들뢰즈의 철학적 메세지에 매료된다. 그와 융, 그리고 헤세가 나의 인생선배이자 스승이다. 올해도 나는 내면을 깊게 깊게 탐구하는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으며 살 것 같다. 그런 질적 차이를 만들어 수레바퀴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이 내 목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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