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쳐진 감정의 지형에서

이행자의 기록

by Tess


요즘 전남편이 부쩍 꿈에 나온다. 명절 연휴에만 3-4번은 나온 것 같다. 내가 그를 참 많이 보고 싶어 하나보다. 꿈 속에서 우리는 결혼한 상태로 하는 행동이 매우 자연스럽다. 헤어지기 1-2년쯤의 모습같다. 같이 살고있고, 내 옆에 당신이 있는 것이 당연한 상태_


꿈 속에서 나는 당신에게 "똥쌌어?"라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을 체크하고 어디 데이트를 나간다. 당신과 있는 것이 안정되면서도 권태로운 그런 상태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면, 그렇게라도 보고 이야기한 것이 남아서 먹먹해진다. 꿈에서라도 봐서 좋다며 기뻐하다가도... '아 우리 헤어졌지'하면서 상실감이 온다.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어. 꼭 그런 모습을 보여줄거야!!! 봐라. 나 인기 많은 것 좀 봐라. 너 없어도 내가 이렇게 남자들한테 먹힌다" 하면서 혼자 난리떨던 시기가 지났다. 그리고 이젠 친구나 남자, 다른 distraction으로 회피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온전히 외로움과 고독을 마주하고 있다.


이게 나쁘지 않다. 그 동안 '혼자되면 어떻게하지, 외로움에 잡아먹히면 어떻게하지?'하면서 실체없는 두려움에 휩쌓여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몸과 마음을 바쁘게 달달 볶아대며 살았으니까... 진짜 외로움이란 그렇게도 고통스럽고 무서워할만한 것인지 아닌지, 내가 직접 겪어보겠다고 한 것 까진 좋다. 이런 내가 멋있을 지경이다. 그래서일까? 밤만되면 느끼는 이 외로움의 강도가 어마어마하다. 그 전의 것과 전혀 다른 깊이와 층위로 들어가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야'라는 외로움과 '나는 혼자가 되었어'하는 상실감에 몸서리친다. 이게 얼마나 실재적이고 감각적으로 와닿는지... 다시 혼자된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섭고, 집에 와서도 침실에는 미적미적거리다 늦게 들어간다. 이 외로움과 상실을 느껴야하는 시간을 미루고 미루는 것이다. 그러다 물주머니나 무게감있는 어떤 것을 가슴에 올려놔야 잠이 드는 요즘이다.(사실 잠도 잘 안온다)



그래도 또 '너가 보고 싶어'하면서 항복하고 엉엉 우는 걸 반복하며 어떤 묘한 자기혐오에 빠지곤 하는데... 최근_ 이 울음의 정체가 그리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20% 그리움이고 80%의 두려움이었달까?



나는 15년을 함께 한 형제처럼 지내던 전남편과 헤어지는 것도 힘들지만, 다시금 그와 재결합할까봐 더 불안해하고 있다. 15년의 세월동안 우리가 그래왔던 것처럼 '내가 너를 다시 찾을까봐. 그래서 또 만나서 붙게될까봐. 이렇게 멀리 온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질까봐. 내가 이성을 잃고 너를 찾을까봐' 등등 돌아갈까봐 두려운 것이었다.


나는 그런 희연이 올라올때마다, 남편이 그립다고 울었지만.. 사실 그 밑 층위에 깔린 감정은 '지금까지 아둥바둥 오체투지하는 마음으로 버틴 것이 싹 사라질까봐... 그렇게 과거로 회귀할까봐 두려워 한 것이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아직 나는 단단하지 않으니까, 의존성이 깊게 있으니까, 어떤 동앗줄이라도 잡고 싶으니까... 순식간에 정신줄을 놔버리고 '나 돌아갈래!!!'하고 행동을 취할까봐 무서워 한 것이 울음으로 표출된 듯 하다.


하... 나 그렇게 버티고 있구나. 울면서 울면서_ 그렇게 공포에 떨면서도 안돌아가려고 참았구나. 동시에 그 정도로 돌아가는게 싫구나. 무섭구나. 예전의 그 삶이.. 나에겐 죽음터이자 블랙홀이구나. 거기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공포스러워서, 운 것인데.. 이걸 그리움이라는 표면적 감정으로 착각하고 있었구나! 하며 좀 명료해진다.


'보고싶어'란 감정을 거둬내니, '사실은 너와 다시 만나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까봐 무서워'란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도 명료해졌다! 아 나는 지금의 혼자된 삶을 막 적극적으로 긍정하지도 못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 오히려 그럴까봐 매일, 매 순간이 사투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내가 그러고 있구나 ^________^


나는 비틀대면서도 내 중심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의 울음은 이행중인 사람, 세계를 건너가는 사람이 겪는 필연적인 것일거다. 아픈 것은 틀림없지만 나에겐 이 선택지밖에 없다. 어떠한 진통제나 뽕도 없이 간다. 아파보기로 한다. Oh, s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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