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버튼의 이면

by Tess

오늘 나는 또 하나의 국면을 발견했다.


최근에 만난 사람이 있다. 그 사람. 겉은 반지르르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개성화를 이룬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디에도 온전히 서 있지 못한 사람. 누군가의 집에 기거하고, 돌봄을 받으며, 타인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겉으론 자유로운 척하지만, 실은 그 자유를 지탱할 기반이 없는 사람. 말 그대로 허세 가득한 인간이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발작 버튼이 눌렸다. "뭐지? 뭔가 모르게 불편한데?" 하면서... 만나고 오면 며칠을 쉬어야 할 정도로 에너지가 뺏기는 느낌이었다.

오늘에야 알았다. 그건 그 사람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니라, 내 안의 그림자를 본 것이었다.


나 역시 여전히 부모의 질서 속에 여전히 기대어 있고,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겉으론 단단해 보이지만, 속에는 아직 의존과 불안을 품고 있다.

그 부분을 스스로 미워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볼 때마다 투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보면 뭔가 묘하게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가벼이 넘길 일도 친구를 붙잡고 오바스럽게 이야기를 해야 풀렸다. 이것은 사실 신호였다. 내 마음, 내 그림자를 보라는....

그리고 그 분노의 방향은 내 안의 미숙함을 향해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 이유도 이제 이해된다.

싫음과 연민, 발작 같은 감정들이 뒤엉킨 건 그 안에 나와의 동일시, 그림자투사, 나를 향한 연민이 한꺼번에 작동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짜증은 사라지고, 감정이 선명하게 보인다.

“아, 내가 저 발작 버튼을 누른 이유는 바로 이거였구나.” 라면서 그 이유에 대해 언어화 할 수 있다.

지나치게 가족주의적인 점, 들어주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공감하지 않고 있는 얉음, 너무도 경험치가 없는 모습, 그러면서 있는 척 하는 모습 등등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많이 왔지만, 부모의 영향력은 여전히 내 안에 거대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예전과는 다르다. 지금의 나는 미숙함이 올라올 때마다 '아직도 이모양이니? 언제클래?'하면서 어린 희연을 몰아세우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바라본다.

그 미성숙함, 의존성, 기대고 싶은 마음, 거기서 오는 절망까지 포함한 그림자도 나다. 이젠 그걸 안다고 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 버티는 힘이 생긴다. 나를 키우고 키워서 이걸 싸안고 살아야겠단 생각이다.


오늘 나는 조금 더 안전해진 느낌이다.

나를 꾸짖지 않고도 나로 설 수 있는 자리. 그렇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 같다.

이게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독립이자 통합이다.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 안엔 미숙함이 있고, 그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 나의 성장을 위한 신호라는 걸.

발작처럼 느껴지던 순간들 속에는 언제나 나의 그림자가 있었다. 이제 나는 그것을 쫓아내지 않고, 함께 앉아본다. 불편하고 낯설어도, 그 자리에서 나를 알아본다.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나로 산다.

그리고 그 알아차림이, 나를 조금 더 자유롭고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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