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꺼진 욕망, 살아나는 중심

by Tess

요즘 신기할 정도로 어떤 성적욕구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혼을 하고, 자위기구를 4개를 살 정도로 달떠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도 오래토록 쌓여온 욕구불만은 해소가 되지 않아, 참다 참다 못해서 어플로 남자를 만나 원나잇도 하고 파트너쉽도 맺던 나였다. 그 과정이 해방감이 느껴져서 짜릿하기도 했다. 이런 삶을 오래 살거라 생각하고, 장기 피임법인 루프를 끼는 것을 알아보는 등 오만 난리를 쳤었다.

그런데 요즘엔 저 욕망의 불이 확 꺼졌다. 사람과 연루되는 것이 싫어 섹스만 하고 다닌 건데, 이젠 그 가볍고 간결한 만남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조차 귀찮다. 집에서 혼자있는 것이 제일 편하다. 심지어 밥도 혼자 먹는게 좋음(몇 달 전만해도 '혼자다니는 나는 불쌍해'라며 청승떨던 나였는데... 이젠 달라졌다! 제발 어떤 방해도 없이 혼자있고 싶다.)

이런 극단적인 변화가 신기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요즘 나는 이렇게 나랑 노는게 제일 재밌움) "나 왜이러지? 뭐가 바뀐거지?" 하면서...

그렇게 보자, 타인 특히, 남자로부터 인정을 받는 프레임에서 자유로워진 내가 보이더라. 사회/문화적 영향인지 나는 10대부터 남자친구가 있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야 내 가치가 올라간다고 믿었다. 싱글인 상태는 뭔가 불완전하고 애인이 있어야지만 능력이 있고(이게 왜 유능의 여부와 연결되는지 모르겠지만) 갖춰진 인간이라고 봤다.

여기에 덧붙여 20대 초에는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내 가치를 결정한다고 봐서, 외모나 조건 같은 것들을 보고.. 성에 안차면 상대방에게 불만을 갖기도 했다.

이 얼마나!!! 여자를 옭아매고 있는 커다란 목소리인지!!!

"혼자면 안되. 그건 불안정한 상태야. 너는 누군가가 필요해. 그리고 너의 인생은 그 옆에 있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니까, 신중하게 골라야해. 까다롭게 굴어!"

이러면서 누구를 찾되, 외부 조건을 먼저 보며 판단질하는 그런 짓들을 했다.

다행히도 나는 조건을 보는 여자는 안되서, 성품 좋다고 생각한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나름 뜨겁게 살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과도 갑자기 이혼을 하고나니, 이 모든 것이 너무 허무해서 견딜 수가 없는 거다. 이런 공허함 속에서도 '내가 여자로 보인다는 것'이 너무 신기 해서... 남자들을 계속 찾았다. 그들이 나를 찾기도 했고 ㅎㅎ 근데, 이젠 이런 프레임 자체에 질문을 하게 된다.

"누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흔히 말하는 예쁜 나이를 지나면 만날 수 없는 것인가? 나는 누굴 만나고 싶은가? 겨우겨우 그 세계를 떠나왔는데, 여전히 다른 사람을 갈구하는 것은 내 근원적 결핍 때문은 아닐까? 나는 온전히 혼자 있어본 적이 있는가? 혼자있다는 것이 정말로 선택받지 못한 여자의 비참한 모습일까?" 등등 여러 질문이 올라온다.

한편, 솔로지옥, 나는솔로, 환승연애 등등 많은 미디어들에선 여자 남자들이 나와 '나는 무슨 대학을 나왔고 무슨 일을 한다'라며 자기소개를 한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몸매를 뽐내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남자들도 몸관리를 안하면 키보드에서 조리돌림을 당한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메세지는 너무도 노골적이다.


1. 헤테로여야만 한다. 모든 사람은 이성애자여야만 하고 남/녀가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2. 이왕이면 어울리는 사람끼리 만나라. 외모, 학벌, 직업, 연봉 등이 맞는 사람끼리 짝찌어주려고 한다.

3. 싱글인 것은... 지옥에 비교될 정도로 불행한 것이니 "너는 짝을 찾아서 결혼을 해야한다" 라는 것이다.

미디어에서 대놓고 이런 메세지를 전하니... 내가 10대부터 '나는 남자친구가 있어야 해'라고 믿은 것도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연애와 결혼 이혼 후 free sex까지 겪어보고서야 나는 이런 질문들에 근원적인 의문이 생긴다.

"저게 맞아????"

"저게 진짜라고???"

"희연아 그래서 결혼했을 때 너가 완성된 기분이었어??? 충만했니???"

아니다. 오히려, 이게 결혼생활이라니!!! 라면서 가부장제와 그로 인한 불공평한 여성의 노동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나다. 물론 저런 '누가 있어야 한다' 라는 사회적 아비투스와 시선때문에 '하... 나 이제 더이상 누굴 찾지 않아도 되' 라면서... 결혼한 상태를 안정감이라 믿었었다.

그런데, 과연 안정이라는 것이 있는가? 헤어짐없는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만 할까? 아니었다. 결혼-아이로 이루어진 삶이 완전한 것일까? 그것을 위해, 이를 쟁취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삶에서 완수해야 할 일이 그것이 다일까? 등등 질문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대해선 대부분 NO 라는 답이 나온다. 나는 어쨌든 해봤고, 겪어봤고, 이 천편일률적인 시스템이 맞지 않다라는 판단도 내렸다. 나는 혼자 밥을 먹을 때 느껴지는 그 고요함,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공간에서의 쉼, 우이천을 따라 걸을 때 들리는 물소리. 이런 것들이 나를 채워준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어떤 관계, 나도 모르겠는 삶을 창조하려고 실험중인 단계다. 이 매일매일의 실험은 잘되는 날도 있고, 더딘 날도 있어서... 뭐라 결론을 못 내리겠다. 중요한 것은 이 안에서 내가 굉장한 주체성과 자유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내가 직접 먹어보고 알겠어.

누가 필요한 지 아닌 지... 혼자 늙어서 외로울지, 서러울지는 내가 겪어보겠어" 라면서 내가 해보겠는 이 자세에서, 이런 내 모습에서 어떤 대견함까지 느낀다. (다른 말로 하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사회적 메세지 다 꺼지라는 것이다!!! ㅋㅋㅋㅋㅋㅋ)

나의 바람이 있다면, 이 자유로움이 유지되면 좋겠다. 나는 꼭 혼자있겠다며 어떤 고립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혼자있어본 적이 없으니... 이젠 그 선택을 자발적으로 내리겠다는 것이고 이것에 대해서 어떤 판단질도 거부하겠다는 상태다. 몸과 정신이 같이 가는 것인지... 몸이 더 빠른 것인지, 달떴던 성욕도 푹하고 꺼졌다. 이제 내 중심을 키워갈 차례인가보다. 가보자. 끝을 알 수 없는 그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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