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를 들어주며 생존하던 나

by Tess

지난 주 월요일, 출근길 계단에서 미끄러져 꼬리뼈를 심하게 다쳤다(미추 미세골절진단 받음ㅠㅠ) 넘어지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섹스는??? 나, 섹스 못하겠네?

엄마한테 가기로 했는데… 갈 수 있을까?


눕지도 못하고 아구구 하면서 다니는 지금까지도, 이 두 생각은 계속 나를 끄달리고 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번뇌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섹스를 좋아한다고? 내가 그 파트너한테 이 정도로 마음이 있는 건가? 왜지? 왜 당분간 섹스를 못하는 것에 이토록 신경을 쓰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였다.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운전을 해서 엄마를 찾아가겠는가?!
그런데도 ‘택시를 불러서 갈까? 아냐, 티날 것 같은데…? 아프다고 하면 엄마, 아빠가 오는 거 아니야? 생신인데… 안 가도 되는 건가? 너무 불효하는 거 아냐?’ 라는 '예쁜 딸이고 싶은,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초자아가 나를 붙잡는다.


이렇게 일주일 넘게 질문을 던지다 보니, 실마리가 잡혔다. 나에겐 이런 도식이 있다.

누군가가 무엇을 원한다 → 내가 그 욕망을 캐치한다 → 요구로 받아들인다 → 못 들어주면 불안해한다.

즉, 누군가의 욕망을 끊임없이 들어주며 내 효용과 정체성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걸 못 들어주는 상황이 오면, 혹은 내가 상대방과 다른 욕망을 품게 되면,
‘말을 잘 들어야지. 착해야 한다. 상처 주면 안 된다’는 초자아의 메시지가 올라와 신경증이 시작된다.

섹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나를 원하는 걸 알고 있으니…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상황(꼬리뼈 깨짐)에서 전전긍긍했다.
이 얼마나 비이성적인가! 나는 그와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내 무의식은 여전히 그의 욕망을 들어주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가 나를 깊이 좋아할까봐 지레 겁을 내기까지 했다.

‘나는 그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없는 여자니까…’
몇 번 대화해보니 그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 스타일로, 아이를 원하고 결혼하고 싶어 한다.
나는 그걸 들어줄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이미 그의 욕망을 알고 있으니 ‘너는 나를 좋아하면 안 돼. 복잡해진다’ 하며 혼자 걱정했다.


하지만 이건 철저히 그의 몫이다. 그가 원하는 걸 내가 들어주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끄달릴 이유는 없다.

내가 이렇게 정이 많고,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집착하게 된 이유는 자라온 양육환경에 있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아들로만 살며 자신의 가정을 방치했고, 엄마는 남편 부재와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 질투로 나에게 무지막지하게 집착했다. 그 결과 나는 엄마와 아버지, 친밀한 사람들의 욕망을 재빠르게 캐치하고 들어주는 숙주로 성장했다. 이건 내 생존전략으로 발전한다. 이런식으로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예민하게 관찰 → 들어주는 사람 → “센스 있어, 친절해”라는 칭찬 → 정체성화’의 도식이 완성되었다. 즉, 나에게 불안을 주는 욕망과 요구는 내 타고난 예민함과 저런 가정환경에서 자라면서 획득한 생존 전략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는 조금씩, 스스로 중심을 잡으며 객관화할 수 있다.

동시에 이제는 알 것 같다. 섹스, 부모, 타인의 욕망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할 때라는 것을.

이걸 알아차리자 정체 모를 신경증은 사라지고, 흩어졌던 중심이 내게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내 몸과 마음이 회복할 시간_
그렇게 내가 무거워지고 커져갈 시간_

정신분석을 마쳤어도 나는 스스로를 잘 관찰하며, 외부의 도움 없이도 나를 이해하고 있다. 여러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조차 중심이 나에게 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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