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언니와의 만남 후....
19살때부터 알고 지낸 M언니가 병문안을 왔다.(지금 나는 미추골절로 끙끙거리며 다니고 있다) 우리는 둘 다 센 엄마 밑에서 자랐으며, 두 번의 유산을 경험한 진한 자매같은 사이다. 두 번째 유산 이후 나는 "이만큼 했으면 됐어. 내 삶에 아이는 없어"하고 reproductive의 시스템에서 나왔다면, 이 언니는 다르다. 시험관을 해서 올해 초 아이를 낳았고, 지금 열심히 키우고 있다.
27살부터 결혼 전까지 M언니와 나는 이태원을 휘어잡고 놀았었다. 각각 목동과 동부이촌동에 사는 우리는 명품백을 들고, 한 껏 꾸민 뒤 금요일 밤마다 이태원에 가서 술을 마시며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고 놀았다.(그때는 이태원이 그렇게 핫한 장소였다. 글램이나 프루스트 같은 바에가서 예쁜 술 한잔 시켜서 서있고 그랬움. 우리한테 말걸라면서 ㅎㅎ) 그 당시에도 나는 ㅇㅇ씨(전남편)과 사귀고 있었지만, 그가 군대에 있었기에... 나름 즐겼다.
그래도 나는 밤 늦게까지 안놀고 밤 12시전에 들어갔다. '역시 나는 ㅇㅇ씨 밖에 없어' 하면서 신데렐라마냥 누군가의 여자친구인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내가 그렇게 순진했었다.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하고, 다른 남자와 말걸고 몸섞으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도 변했다. 우선 나는 어플로 남자를 만나, 섹스파트너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얘는? 쟤는? 하면서 닥치는대로 만나보고, 실험한다. 밤늦게도 필요하다면 잘다닌다. 10년 전처럼 '밤은 위험해!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해'라는 순진한 어린 아이가 아니다. 내면이 바뀐만큼 스타일도 마찬가지로 변했다. 어깨 밑으로 내려오던 긴 머리를 싹뚝 잘랐으며, 더이상 꽃무늬 원피스는 입지 않는다. 미니멀하되 한 가지에 포인트 주는 것이 요즘의 내 스타일이다.
그렇게 꾸미기 좋아하고, 호텔가서 밥먹고,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을 하던 M언니도 180도 바뀌었다. 하이힐에서 발편한 신발로, 벤츠에서 지하철로, 피부시술에서 아이 문센을 챙겨다니는 사람으로 확 바뀐거다. 심지어 ㅋㅋㅋㅋ 집 근처 쌍문시장에서 백도 한 박스와 무화과 한 박스를 사서 바리바리 들고왔다. 손바닥만한 미니백을 들고 다니던 언니였는데!!! 내가 알던 M언니는 전생의 모습인건가?!
언니가 보는 나도 마찬가지일거다. 예전의 나, ㅇㅇ씨와 너무 잘지내던 나, 그와 몇 번을 헤어져도 다시 만나던 나, 가정에 충실하던 나, ㅇㅇ씨 밖에 없다며 매달리던 나, 엄마 아빠에게 잘하고, 사랑받는 딸로 있고 싶어 하던 나를 봐서 그런지...
지금의 내가 섹파이야기를 하고, 혼자 여행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혼자 사는 거 너무 좋다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제법 놀라는 것 같더라.
그러면서 물었다 "너희 연락해? 그 뒤로 한 번이라도 연락한 적 있어?"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
그러자 언니는 바로 "독한 것들" 이라며 진심을 내뱉는데, 그 말이 나에게 훅 들어왔다. 맞아ㅜ 우리 졸라 독해......ㅠㅠㅠㅠㅠ 이렇지 않으면 헤어짐을 완수할 수가 없는걸?!
오랜만이다. 나와 전남편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_
요즘의 인간관계라고 하면, 이혼 후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과거의 나, 즉 전생의 내가 어땠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 히연이 얼마나 가족에게 얽혀있었는지, 얼마나 불안하고 의존적이었는지, 그리고 그걸 보지 못해 얼마나 더 큰 고통 속에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 M언니에게서 변한 나의 모습을 듣는 것이 신선하고 충격이었다. '나 진짜 멀리 왔구나...' 싶구_
혼자서도 야무지게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본 언니는 '이게 너가 원했던 건가보다' 하면서 지금의 나를 인
정했다. ㅎㅎ
나이가 들고, 삶의 양상이 매우 달라졌어도 어떤 부분은 참 여전했다. 거실 바닥에 누워서... '결혼은 비위가 강한 여자일 수록 잘하는거래' 라면서 자신의 친오빠를 까는 부분 ㅎㅎ, 엄마의 지독함에 치를 떠는 모습, 영어강사로써 진상학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등은 예전과 전혀 다른 것 없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 언니를 대하는 것이 참 편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예전엔 M언니가 아이가지려고 시험관한다고 했을 때, 그만 좀 하지... 라면서 뭘 그렇게 아이를 갖고 싶어하나 하면서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축하하는 마음이 안들었다. 질투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원하는 마음'조차 안생기니까... 흔히 말하는 정상성, 정상가족에 편입되는 언니가 부럽기도 했을거다.
그런데 저 세계를 완전히 떠난 나는... 이제 있는 그대로의 언니를 인정하고 언니의 삶을.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유지하는 그 삶을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진심으로 언니와 언니 가정이 평온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복숭아와 무화과가 너무 많아서, 다시 가져가라고 하자... 언니는 "너 집에 오는 그 남자랑 나눠먹어. 히연이 잘 부탁한다고 언니가 줬다고 해 ㅋㅋㅋㅋㅋ" 라면서 빵터뜨리고 갔다. 하 여전하다 정말_ 세월히 흘러도... 여전한 부분은 계속해서 있어서 다행이다.
꼬리뼈 부상으로 집에 있는데... 덕분에 못 보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나는 진짜 혼자야'라면서 엉엉 울고 서러워했는데, 결혼시절보다 덜 외롭다. 마음을 알아주고, 직접 와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있다. 충만하고 감사하다. 나 제법 잘 살아왔나보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