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12월이다.
데이 근무가 끝나고 나면 벌써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추운 날씨 탓인지 혈관성 질환 환자들이 부쩍 늘어난다. 12월 근무 신청 장부는 금세 빼곡해 욱여넣을 장소도 없다. 등등, 간호사들이 연말이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은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
올해는 중환자실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작게 틀어놓고, 스테이션마다 작은 랜턴 오르골을 올려놓았다. 저절로 눈도 흩뿌려지고, 반짝거리기도 하는 제법 괜찮은 장식품이었다. 문제는 스테이션 안쪽에서 보는 장면이 뒷배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이질감이 들어서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다가도 문득문득 올려다보게 된다는 것 정도?
멍하니 쳐다보다 뒤에 가만히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시선이 닿는다. 곧 크리스마스인데. 또 금방 올해의 마지막 날. 새해인데. 환자들 대부분은 아마 이 사실을 모르겠지. 아니면 지금 그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겠지. 이런 날까지 아픈 사람들에게도, 또 그 사람들을 돌보는 우리에게도 그렇듯 어찌 보면 특별한 날은 여기에서만큼은 일종의 사치인지도 모른다.
퇴근길. 들뜬 분위기에 잠긴 서울의 거리로 나온다. 빨간색 초록색으로 반짝거리는 전구들. 선물 상자. 요즘 들어 다 비슷하게 들리는 캐럴 노래들, 지나가는 연인들과 가족들. 다시금 문득 금방 전까지 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특별한 날에 대해서도. 아마 크리스마스나 새해, 설날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장 그리운 것은 이런 안온한 시간,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는 기념일을 함께 보내는 가족들이겠지. 이곳 밖의 가족들은 그래서 유독 그립고 허전한 연말을 보내고 있겠지. 명절이 오면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연말만 되면 소중한 사람들을 찾는 게 어쩌면 사람들의 속성이듯, 결국 모든 기념일은 함께 보내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떨어져 흘려보낸 크리스마스가, 금세 어느 집이나 들어가는 산타 같은 따뜻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돌아오는 반짝거리는 빨간 퇴근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