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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간호사 Feb 07. 2022

의도와 결과의 상관관계

치료가 늘 옳은 걸까 생각하게 되는 날들

0.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모든 의도는 대체로 명확하다. ‘환자 치료’라는 단순한 목적 하에, 수많은 직군들과 인력들은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각자 주어진 업무를 하며 목적지를 향해 움직인다.


특히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수많은 일련의 행위들이 질병을 이겨내기 위한 처치 이전에 급성기의 환자들이 죽지 않도록 붙잡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선행한다.

일단 숨이 붙은 채로 지가 되고나면, 그 다음 과정은 죽거나 회복함으로써 끝난다. 그 끝은 다시 다음 환자로 금세 잊힌다. 그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때때로 악역이 된 듯한 이질감이 드는 순간들을 가끔 마주한다.


1.

- 우리가 사람을 죽였다.

안타깝게도 이 문장은 한치의 모호성 없이 적확하다.


피해자는 아주 오랫동안 온갖 지병을 앓다가 80세가 넘는 나이에 심정지를 맞은 환자였다.

119 구조대원들과 응급실의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그의 심장의 기능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살려내 곧바로 중환자실로 입원했지만 이미 그의 영혼은 진작에 증발해버린 것 같은 몰골이었다. 수많은 약물이 억지로 심장을 짜내고 혈관을 조였지만, 반대로 사지와 동공은 이미 축 늘어져 어떤 자극에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누가 보아도 그가 회생하여 전처럼 돌아올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피검사나 영상들은 이를 뒷받침했고 결국 그의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연명 치료 거부 동의서에 사인했다.


인공호흡기가 그의 폐를 온전히 대신하여 숨을 쉬고, 신장기능을 대신하는 CRRT, 수많은 승압제들 덕에 그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정도로 살아있었다. 더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죽지 않을 정도의 상태가 유지되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불확실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모호한 생존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얼마만큼 길어질지 더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보호자들은 병원비가 부담이라며 언제 돌아가시겠냐고 했다.

교수님은 그건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매일 응급실에서는 쉬지 않고 수많은 환자를 죽지 않게 만들어 중환자실로 올렸다. 더는 여분의 자리가 없었다. 응급실에는 아직도 무수한 대기자들이 있었다. 교수님은 중환자실의 책임자였다. 결국, 조용히 환자의 침대로 다가가 눈을 감겨주고 두 손을 모아드렸다. 덤덤한 표정으로 숨을 한번 들이쉰 다음 그는 인퓨전 펌프의 전원을 꺼버렸다.


거짓말처럼 즉시 모니터에 평행선 여러 개가 그려지고 빨간색 알람이 울렸다.

대기 중이던 보호자들은 들어와서 울음이 섞여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인사, 생전의 추억들, 걱정하지 않게 잘 살겠다는 둥의 절절한 얘기들을 했다.


이제 모두가 연명의료를 합법적으로 거부할 권리가 생겼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의미 없는 연명에서 다른 선택지가 생긴 것은 놀라운 발전이다. 다만 타인의 마지막 숨을 스스로 거두는 일은 누구에게나 지독히도 무거운 짐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죽음. 그걸 자주 실행에 옮겨야 하는 삶.


처음으로 연명 치료를 종료한 것을 목격한 날. 나는 슬픔에 젖은 보호자들을 진정시키고, 환자의 시신을 정리하고 다음 올라올 환자를 받아내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혼란스러움이 합리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했다.


2.

40대의 남자가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렸다.

얼마만큼 절망적이어야 희망찬 문구들로 도배된 생명의 다리를 즈려밟고 뛰어내릴 수 있을까. 다리에서 발을 떼는 순간은 공포를 뛰어넘을 강한 의지력이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반대로 삶의 모든 것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잃어야 가능한 것일까. 그는 거기서 스스로의 절망과 의지로 몸을 던졌고, 그대로 속절없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한강의 수면 위로 추락했다. 그런데 그는 그 와중에 불행하게(?)도 순찰 중이던 수난 구조선의 바로 옆에 떨어졌다.


결국 타의에 의해 신속하게 병원에 실려 온 그는 내가 살면서 본 어떤 종류의 까만색보다 더 어두웠다. 한때 잘되던 사업실패로 가족들을 떠나보냈고, 이제 남은 것이라곤 세다 보면 0의 숫자가 헷갈릴 정도의 빚뿐이라고 했다. 게다가 마포대교에서의 추락으로 하반신 마비까지 더해졌으니 우울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는 지나가는 간호사들을 붙잡고 제발 자기는 그냥 편하게 죽고 싶다고 애걸했고 우리는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반복되는 대화 끝에는 포기한 투로 그럼 나가서 다시 죽죠. 뭐. 하고 자포자기한 채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차라리 처음 떨어졌을 때 끝났더라면 오히려 그에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을 죽이려는 의지를 두 번이나 가져야 하는 삶은 어떤 질감일까. 아무리 좋은 의도여도, 우리가 필연적으로 악역이 되는 순간도 있구나.


모순투성이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적이라도 일어나, 그가 삶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을 수 있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한 고비를 넘기자마자 병원비 때문에 더는 안 되겠다며 자의로 퇴원하여 휠체어를 탄 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안녕히 가세요. 고생하셨어요. 이제 다신 중환자실 오지 마세요.’ 했던 내 인사에도 무겁고 이질적인 의미가 섞여 있었다.


3.

B 할아버지는 국가 유공자였다. 아마 6·25 전쟁 참전 군인이라고 하셨던가. 보훈병원에서 오랜 기간 투병을 하시다 상태가 악화하여 3차 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되셨다. 오늘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장 기능이 떨어져 있었다. 지긋한 연세에 뇌경색, 오랜 투병 기간으로 성한 곳이 없어 수술이나 시술을 버텨낼 몸이 아니었다. 주치의는 보호자에게 가서 연명 치료 중단 얘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환자의 상태는 눈에 띄게 안 좋아지고 있었지만, 보호자들은 강력히 거부했다. 약, 시술, 수술이든 뭐든 좋으니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해달라고 했다. 담당의는 한숨을 쉬며 들어와 돈 때문일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살아있어야 나오는 연금. 그리고 국가유공자에게 보장되는 치료비 지원. 보험금. 그런 현실적인 얘기들.


우리는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치료를 했지만, 환자분은 돌아가셨다. 심정지가 오고 나서는 그 병든 몸을 30분이나 심폐소생술로 더 짓눌렀다. 이상하게도 그 30분 내내 나는 할아버지께 실례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4.

삶과 죽음. 사람과 돈. 시작과 마지막. 가족과 건강,

병원은 항상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으로 소중한 것들이 엉키고 성겨서 복잡하고 또 애잔하다. 그 안에서 일을 보내는 우리는 그것들에 무너지고 무뎌지며 점점 익숙해진다. 어떤 것들에서는 발전하고 또 어떤 일들에서는 아직도 한없이 헤맨다. 수많은 가치관과 보편적 윤리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나는 항상 스스로 양팔을 벌린 채 중심을 잡고 조심스레 걸었다.


부디 이 종착지 즈음에 이 어려운 문제들, 아직 명쾌히 보이지 않는 고민들에 대한 답안지를 찾을 수 있를, 그 과정에서 나보다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기록해 놓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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