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쯤, 나이트 근무가 가장 힘들 때다. 정신은 비몽사몽 한데, 몸은 아침 피검사나 엑스레이 사진, 마지막 자리 정리, 아침 약 준비 등으로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 그때 응급실 환자가 중환자실에 새로 예약되었다. '성명 미상. 26살. Post OP. 예상 입실시간 8 am.' 어차피 아무리 빨라도 내 근무가 끝나고 올 환자라서, 크게 개의치 않고 환자 상태를 대기 중에서 입실 가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다시 비몽사몽 한 상태로 눈앞의 일들을 마쳤다.
데이번 간호사들이 출근하고, 전체 인계를 주면서 입실 예정인 환자 명단을 열어 함께 보는데 성명 미상 환자 이름과 비고란의 내용이 채워져 있었다. 'Y00. 26세. 본원 간호사.'
안그래도 비몽사몽해서 현실감이 전혀 없는 시간이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랑 같이 입사한 동기. 한달간의 입사교육때도 덜덜 떨면서 같이 춥고 좁은 고시텔에서 함께 잤던 착한 형. 순간 화면에 쓰인 텍스트가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새로고침 해봤지만 당연히 바뀌는 게 없었다. 급히 CT를 열어보았는데 곳곳에 선명히 뇌출혈의 흔적이 찍혀있었다. 나는 선생님께 황급히 인계를 드리고, 내려가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응급실로 뛰어내려 갔다. 전산에 글로만 쓰여있던 환자들이 그곳에는 실제로 누워있었고, 맙소사. 그 와중에는 진짜 Y형도 있었다. 아무리 불러보고 자극을 줘도, 반응이 없었다. 눈앞에 누워있는 형이 뇌출혈 환자라는 게, 또 위험한 상황이라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냥 함께 놀던 며칠 전처럼 술에 만취해 잠든 것 같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응급실에 물어보니, 쓰러진 채로 길에서 행인들에게 발견되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왔다고 했다. 신분증이나 지갑도 없어서 ‘이름 없음’ 환자로 입원했다가, 뒤늦게 신원이 파악되었다고 했다. 밖은 매순간 한겨울이었다. 얼마나 오래 그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있었을까. 코가 핑 돌았다. 신상 확인이 늦은 만큼, 강원도에 계신 부모님께도 연락이 늦게 갔다. 뇌출혈은 EDH, SDH가 혼재된 무척 응급한 상태여서 신경외과 펠로우, 레지던트들이 보호자에게 전화로 설명하며 들러붙어 급하게 머리를 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형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어서 보는 내내 저절로 눈물이 터졌다.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왜 보호자들이 그런 의미 없는 말들을 뱉고야 마는지,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알았다.
그는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병원 직원이라서 빨리 되었다기보다, 그만큼 응급한 환자여서 그랬다. 집도할 사람들까지 내려와서 시간을 아끼려 같이 머리를 밀고 수술 준비를 도왔을 정도로. 그날 나는 퇴근했던 기억이 없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왔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많이 울었던 것 같긴 한데. 밤을 새운 몸으로도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근무 중인 동기에게 연락해서 수술이 끝났는지를 확인하기를 반복하다 악몽을 꾸다 출근했다.
출근해보니 Y형은 두개골을 열어 출혈을 잡고, 혈종을 빼내는 수술을 끝낸 뒤 중환자실로 이미 도착해있었다. 그를 신환으로 받은 간호사는 또 다른 동기인 수진이였다. 마음이 안 그래도 여린아이라 엉엉 울면서 환자를 사정하고, 또 기록을 넣었다더라. 나는 근무 내내 30분마다 눈꺼풀을 열어 동공반사를 확인하고, 통증을 줘서 반응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아침보다는 조금 호전되었다. 의사소통은 안 되었지만 꼬집을 때마다 '아... 왜...' 하고 중얼거렸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다행이었다. 희망이 보였다.
근무시간이 끝나고도, 나는 자원해서 환자 옆에 붙어있었다. 회복되면 여기 있는 간호사들을 오가면서 봐야 할 텐데 일어나서 부끄러울까 봐 포지션 체인지도 혼자 하고, 얼굴과 몸도 단정하게 닦았다. 낄낄대며 웃으면서 아 그때 내가 형 바지도 갈아입혀 주고 소변줄도 꽂았다고 생색낼 날이 왔으면, 하고 바라면서.
다음날 출근해보니, 형은 눈을 뜨고 있었다. 아직 술에 취한듯한 눈빛이었지만, 그는 나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어? ㅇㅇ야. 형 담배 한 대만...
그 목소리에 다시 코가 찡했다. 돌아왔다. 아직 온전치 않아도, 어떻게든 잘 회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속에서 며칠 내내 막혀있던 무언가가 한꺼번에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야. 여기 어딘지 알아? Y형. 정신 차려. 이거 보여? 나 누구야?
-몰라.. 애들이 자꾸 와서 꼬집어. 아.. 젖꼭지 아파.
그 바보 같은 대답에 이제야 웃음이 났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형은 일반병실로 옮겨졌다가 퇴원할 수 있었다. 일반병실에 입원했을 때도 매일같이 면회를 가서 영양가없는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형은 병원에 입원해있던 모든 기억이 송두리째 없다고 했다. 마지막 기억은 다 같이 부서 회식을 하고, 2차를 갔다가 혼자 집에 가던 길이었고 그 뒤로 기억나는 건 퇴원하고 자고 일어나 보니 엄마가 옆에 있었다고 했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기간이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늦지 않게 신고해주었고, 다행히 우리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또 곧바로 수술을 들어갈 수 있었던 행운들이 겹쳐서, 이제는 이걸 농담거리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의 잦은 의식 확인 때문에 퇴원하고도 형은 한동안 양쪽 가슴에 피멍이 들어있었고 우리는 형이 소변줄 빼달라고 소리 지르던 모습을 흉내 내며 만날 때마다 놀려대며 웃었다. 그러면 완전히 돌아온 그는 전처럼 건강하고 멀쩡해서 같이 웃다가 머쓱하게 화를 내며 내 어깨에 주먹을 꽂는다.
이 아찔한 계기로 주변의 건강한 누구라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잠깐이나마 보호자가 되어보니(심지어 가족도 아니었는데) 일상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때 기도하던 간절함을 나도 오래도록 가지고 문 앞의 보호자들을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Y형 왼쪽 머리에 남은 흉터처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