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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간호사 Feb 05. 2022

태움, 번아웃, 그리고 조의문.

'나도 너였다'는 슬로건의 의미.

읽을 수록 가혹해서, 첫번째 장만 첨부했음을 양해바랍니다.


잊을만하면 들려오 부고. 4년간 4번째. 24살의 꽃 같은 나이. 고인은 밝고, 까불거리기 좋아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글에는 쓰여있었다. 병원의 미친 업무강도와 선배들의 비상식적인 태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죽음. 또 시간에 밀려 조용해지고, 그렇게 잠잠질때 즈음마다 다시 주되는 불행.


글을 읽는 내내 마음에 먹구름이 가득해,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릴 것 같았다. 그 비극은 몹시 적나라하고, 우리네 세상과 아직도 맞물린 부분이 있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요즘에 저런 데가 어딨어.’라고 생각하며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소설 같은 얘기라고. 아니, 아예 몰랐더라면 좋았을걸. 그냥 금방 잊어버렸으면 싶었다. 그렇게 나는 애써 눈앞에 놓인 일상을 살고 기록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글 속의 그녀는 자주 예기치 못하게 나타났다. 내가 데리고 다니며 교육 허둥대던 프리셉티의 모습에서, 혹은 퇴근하고도 남아 기록을 넣는 신규들의 모습에서 비췄고, 가끔은 선배에게 인계를 주기 전에 안절부절못하는 후배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났다. 정신없이 바빠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는 동료들의 모습에서도 때때로 그녀가 겹쳐보였다. 그랬다. 결국 외면하고 있었을 뿐 그것은 전혀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닌, 어쩌면 아직 모두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뒤늦게나마 애도의 마음을, 옆으로 치워놓고 외면하고 싶었던 비겁함에 대한 반성을 부족한 언어로라도 쓰고자 먹먹한 마음으로 타자를 누른다.



‘태움’이라는 단어는 ‘영혼까지 재가 될 정도로 혼내는 행위’를 의미하는 일종의 간호계에서만 사용되던 은어다. (나무 위키 참조 - https://namu.wiki/w/%ED%83%9C%EC%9B%80) 이제는 제법 공론화되고, 문제가 되며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를 들어봤으리라 짐작한다. ‘태운다’(Burning)는 단어는 간호사들이 흔히 겪는 ‘Burn-out’(타서 소진된다)이라는 낱말과도 분명 아주 가까이 맞닿아있다. 문제는 대체 ‘왜’ 그러냐는 것인데, 글쎄. 솔직히 말해  모르겠다. 8년 동안 간호사 세계에 가장 깊숙한 곳에 몸담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이렇다 할 이유를 모르겠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곳’이라서 엄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엄하게 교육하는 것’이라는 핑계에는 굳이 인신공격이나, 뒤돌아 벽보기 같은 인격적 모욕에 대한 정당성이 있을 리가 없다.


물론 나도 당했었다. 별것 아닌 일로 갑자기 쌍욕을 먹은 적도, 가정교육 운운하는 무례한 얘기를 참아야 한 적도 있다. 밤새 손으로 써온 열 장짜리 리포트를 눈앞에서 찢어버리는 장면도 종종 보았다. 심지어 다른 병원의 친구는 차트로 뒤통수를 맞거나, 선배가 몸을 밀치거나 툭툭 치면서 위협하는 일을 자주 겪었다고 했다. 다행히 아주 오래전 일이다. 신규들이 송년회 때 짧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게 관습이고 매번 두 시간씩 늦게 퇴근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던 불공평한 옛날 세계의 얘기.


그 뒤로 8년이 넘게 흘렀다. 바깥은 많이 변했고, 이곳도 그에 따라 많이 좋아졌다. 다른 뜻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다행히도 정말 좋아졌다. 적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에서는 더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연차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정시에 가까이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한다.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 더는 눈치 볼 필요 없이 특근수당을 받는다. 선후배 간호사들도 제법 끈끈하고, 서로 선을 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알려준다. (오히려 이제는 나한테 후배들이 너무 까불거리고 장난을 쳐서 곤란할 정도다...) 물론 개선할 부분은 아직도 많지만, 이제 나는 운 좋게 최소한의 상식적인 세계에서 살게 되었다. 더 나은 간호계를 위해 할 수 있는건 결국, 내 눈앞에 있는 세상부터 더 좋게 바꿔야 한다. 곰곰이 스스로 남의 선을 밟은 적이 없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풍경은 몇몇 운 좋은 사람들만의 것이었을까. 혼자서 44명의 액팅을 뛰어야 하는 곳, 일에 지쳐 실신하는 간호사들이 있는 곳, 선배들이 욕을 하며 차트를 던지는 곳. 그리고 그 죽음을 개인 가정사로 떠넘기는 곳. 그곳에서 버티다 끝내 다 놓아버린 24살의 여린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가늠할 수 없는 그 슬픔의 깊이에 대해. 그곳은 부디 병원 따위의 곳이나 간호사라는 직업이 없어서 더는 고통받을 일이 없는 곳이기를 기도한다.


2018년의 아산병원 간호사때 집회 슬로건. 우리는 모두 같은 세상에 살았다.

이 버거운 이야기를 굳이 써야했던 이유는 사실 이거다.

지금도 혹시 ‘태움’당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단언컨대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직 서툴 수 있고 당연히 때때로 혼이 날 수도 있을거다. 히지만 그것이 누군가 당신을 인격적으로 깎아내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모르는 것은 배우고, 잘못한 부분은 혼나고 고치면 된다. 딱 그것뿐이다. 같이 걸어가는 것.


누군가가 집요하게 당신을 괴롭히고, 선을 넘거나, 태우고 있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채널들을 찾아라. 파트장, 인사팀, 고충센터 등. 행여라도 그 중에 손을 내밀어 주는 곳이 없다면 그냥 남 생각하지 말고, 그만둬라. 아무도 당신의 얘기를 듣지 않고,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당신도 그럴 필요가 없다. 응급 사직이든, 잠수든 뭐라도 좋다. 더 버티다 완전히 타버려 소진되기 전에, 조각난 자존심이라도 주울 수 있을 때 뛰쳐나와라. 다른 세상은 많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 굳이 타오르는 잿더미 속에서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 그 세상은 틀렸고, 당신이 옳다.


가장 소중히 돌봐야 할 것은 환자도, 선배도, 병원도 아닌 당신이다. 당신 스스로를 간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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